무쌍(無雙)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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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의 성.
내부의 산책로에는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로 가득해서 숲으로 따져도 무방한데, 이곳에 블랙오메가몬이 검을 꺼내든 채 걷고 있었다.
주위의 식물들이 말라죽을 정도의 살기(殺氣)를 내뿜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한 그루의 나무를 보고 소름이 끼치는 미소를 짓더니 검으로 그 나무를 찔렀다.
곧이어 나무 뒤쪽에서 피가 흐르자 블랙오메가몬은 만족스러워하며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검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이런… 짓도… 이제는… 따분하군….”
”따분하면 밖으로 나가지 그래?”
블랙오메가몬의 등 뒤에서 나타난 데몬이 말을 건네자 그는 검을 집어넣고, 몸을 돌리더니 데몬에 말에 답하듯이 말했다.
“…밖이라면…?”
“그래, 여기서 피를 보지 말라고.”
“…허면… 그들의… 피를… 보라는… 건가…?”
“역시 로얄 나이츠의 정신적 지주! 눈치가 빠르군.”
“…좋다…, …네… 말대로… 하지…. …다만… 그들을… 죽이지… 못하면… 다신… 여기에… 돌아오지… 않겠다….”
“그런 맹세를 해도 괜찮은가?”
“…괜찮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한마디 말을 하고는 그대로 가버리는 블랙오메가몬. 그가 간 뒤에 데몬은 피 냄새가 나는 이곳을 둘러보며 혀를 차다가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때, 워프 게이트가 형성되면서 리리스몬이 새빨개진 얼굴을 하며 나오자 데몬은 피 냄새를 없애기 위해 날개를 펄럭여 바람을 일으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라버니….”
“왔구나. …응, 리리스몬?”
“예?”
“감기라도 걸린 것이냐? 얼굴이 새빨갛구나.”
“…….”
“그렇다면 그냥 성으로 갈 것이니, 왜 이곳에 온 것이냐? 덧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죄송해요.”
“그런 말 할 필요 없으니 어서 가서 쉬어라.”
“……예.”
데몬의 말에 리리스몬은 여전히 붉은 얼굴로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만들어 놓은 워프 게이트를 통해 성으로 돌아갔다.
여동생이 이곳을 떠나자 데몬은 한참 동안을 멍하게 서서 그녀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결국 끝내지 못한 거 같구나.”
허탈한 어조로 중얼거리듯이 말을 하는 데몬은 담배를 꺼내 피우면서 성으로 들어갔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 일시적으로 사라졌던 피 냄새가 다시… 전보다 진하게 풍겼다.
*
한편 가이오몬 일행은 석양에 물들어 붉어진 길을 걸으며 다음 마을을 향해 걷고 있었다. 다소 어색해 보이는 것이 싸운 듯이 보이지만 이는 어설피 봤을 때이고, 사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적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속셈이었다.
“거참, 쉽게 가지 못하는군.”
“언제 또 갑자기 나올 줄 모르니까.”
“아무리 그래도 빨리 못 간다는 게 흠이지”
“나라고 해도 비행 도중에 공격 받으면 어쩔 수가 없어.”
“이 편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기도 하고.”
판쟈몬(화이트레오몬)과 가이오몬, 발키리몬, 미스티몬, 라스트(임페리얼드라몬)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베르제브몬은 지난번의 일(리리스몬과의 키스)을 회상하느냐고 얼굴에 홍조를 띈 채 말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베르제브몬을 보고 로드나이트몬은 위화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짓고는 그의 곁에 서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베르제브몬.”
“…왜 불러?”
“무슨 생각을 하기에 말이 없어?”
“……몰라도 돼.”
“아, 그래. 난 이미 알고 있는데.”
로드나이트몬의 말에 베르제브몬은 설마하면서도 놀란 얼굴을 했다. 둘이 뒤에 있기 때문에 다른 일행들은 모르고 있었다.
“…뭘 봤다는 거야?”
“K로 시작해서 S로 끝나는 행위.”
“…너!”
“쿡! 걱정 마. 다른 녀석들한테는 비밀로 할 테니까.”
로드나이트몬의 말에 베르제브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힐끔 곁눈질했다. 그것을 느꼈는지, 아니면 뒤떨어져있는 게 신경 쓰이는지 다른 일행은 미소를 입가에 띠며 둘에게 다가갔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냥 잡담을 좀 했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솔직히 말해봐, 로드나이트몬”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로드나이트몬의 홍두깨 같은 말에 나머지 일행은 의아해하다가 정면을 보고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앞에는 데몬과 그 밑에 있는 마왕 3명, 그리고 블랙오메가몬으로 인해 등장이 없었던 용병이 떼거지로 등장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정예병처럼 서서 수십 여분 동안 기세등등하게 고함을 질렀다. 일반 용병답지 않은 행동에 가이오몬 일행은 오히려 눈을 번득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몸을 풀려고 하는데, 그 때 공간이 살짝 일그러지면서 양측 사이에 블랙오메가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런 블랙오메가몬의 등장에 그들은 일시 정지를 했고, 용병 측은 가이오몬 일행을 처치하려고 블랙오메가몬을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결국 그들은 블랙오메가몬이 휘두른 검에 썰려 육회가 되었고, 대포에서 광선과 탄환을 발사해 소멸시키거나 몸을 박살냈다.
어찌됐든 결국 용병들은 한 명의 디지몬에게 학살당했고, 그는 광기(狂氣)가 깃든 눈동자로 검에 묻은 피를 핥았다.
“…역시… 버러지들…. …피맛이… 역하군….”
“설마 당신이 올 줄이야.”
“…자…, …날… 위해… 희생… 하거라….”
“웃기지 마!”
가이오몬 일행이 입을 모아 같은 발을 하자 비웃음을 날리면서 오른손의 대포로 수십 발의 광선을 발사했다. 물론 이것을 예상한 그들도 광선을 향해 공격을 했다.
「쌍룡섬(雙龍閃)」
「더블 임팩트」
「빙수신장(氷獸神掌)」
「골드 크래쉬(Gold Crash)」
「플레임 드래곤(Flame Dragon)」
「이온 블래스터」
「아젠트 피어」
블랙오메가몬의 광선이 사라진 뒤, 그들은 일단 3조로 나뉘어서 가이오몬&판쟈몬&발키리몬이 왼손을, 미스티몬&로드나이트몬이 오른손을, 베르제브몬과 라스트는 지원 사격을 맡기로 하고 그에게 접근했다.
죽음을 각오한 공격을 제대로 실행해서 블랙오메가몬이 공수를 불완전하게 하려고 했다. 초반에는 효과를 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괴악(怪惡)하면서도 괴상(怪常)한 공격에 오히려 역으로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지금부터는… 당한… 만큼… 갚도록… 하지…!!”
「쌍룡섬 환 편(雙龍閃 換 鞭)」
「로즈 오브 스파이럴 마스커레이드(Rose Of Spiral Masquerade)」
「흑랑빙아편(黑狼氷牙鞭)」
가이오몬과 로드나이트몬의 오의에 맞서서 대포에서 발사한 검은 늑대의 형상을 한 검푸른 색의 광선을 채찍을 만들어서 휘두르는 블랙오메가몬.
블래스트 모드의 베르제브몬과 파이터 모드의 라스트는 가이오몬, 로드나이트몬의 오의가 블랙오메가몬의 오의에 부딪쳐 요란하면서도 조금씩 야해져가자 둘의 지원을 겸해서 그에게 에너지탄을 발사하려고 했다.
허나 그는 베르제브몬&라스트의 행위를 그냥 봐줄 생각이 없어서 망토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고, 일시적으로 행동에 방해를 받아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그들에게 「흑랑빙아편」을 휘두르고는 검으로 가이오몬&로드나이트몬의 오의를 깨트렸다.
갑작스런 공격에 베르제브몬&라스트는 별다른 반격을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당해버려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발키리몬과 미스티몬은 맞은 부위가 서서히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두 디지몬을 옮겨 그나마 안전한 장소에 두고, 가이오몬&로드나이트몬의 옆에 섰다.
“베르제브몬과 라스트는?”
“응급처치를 해서 곧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다행이네.”
“…크크큭…. …이제… 가야… 할… 곳으로… 보내… 주지….”
「패탄(覇彈)」
에너지를 담은 「국린」을 휘둘러 수십 개의 광탄(光彈)을 만든 가이오몬은 그것을 블랙오메가몬에게 던지듯 날렸다.
이에 그는 대포에서 탄환 하나를 발사해 가이오몬이 날린 광탄과 부딪치게 하고, 찰나와 같은 속도로 앞으로 이동해 가이오몬을 제외한 4명을 단숨에 제압해버렸다. 어째서 바로 죽이지 않느냐하면 나중에 천천히 즐기기 위해서였다.
“크윽-!!!”
“모두들!!!”
어쨌든 블랙오메가몬과 1:1로 맞붙어야할 지경에 이른 가이오몬은 「국린」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봤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다가 순간 빠르게 달려들어 검을 맞부딪쳤다.
여러 번 검을 맞부딪치며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가이오몬은 초반부터 블랙오메가몬에게 밀려 싸움의 주도권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넘겨주고, 정신을 집중해 「국린」으로 그의 검을 간신히 막아냈다.
가이오몬이 위기에 처할수록 나머지 동료는 애가 타는 심정으로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블랙오메가몬은 그런 그들을 냉소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검을 찌르듯이 내질렀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가이오몬이 피함으로서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고, 오히려 빈틈이 드러나자 가이오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국린」으로 블랙오메가몬을 공격했다.
“…큭…! …네… 놈…!!!”
“그러기에 누가 빈틈을 보이랬습니까?”
블랙오메가몬에게 약간의 상처를 입히고, 그를 도발하는 가이오몬.
그는 코웃음을 치면서 가이오몬을 바라보다가 땅을 차며 뒤로 물러섰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챈 가이오몬은 황급히 오의를 펼치려고 했다.
그러나 가이오몬이 오의를 준비하기 전에 블랙오메가몬은 자신을 중심으로 땅에 핏빛색 진(陣)을 새겨서 색을 연하게 한 뒤, 썩소를 지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잘… 가라….”
「연옥암홍염진(煉獄暗紅炎陣)」
「흑룡파(黑龍波)」
블랙오메가몬이 오의를 발동할 때, 가이오몬은 그를 향해 흑룡 형태의 에너지파를 날렸다. 검붉은 화염과 순흑(純黑)색 에너지가 충돌하면서 섞이고, 이내 폭발했다. 최강급 오의 두 개가 폭발해서인지 지축이 흔들리며 지진이 일어났다.
몇 분 뒤, 폭발이 가라앉으면서 흔들리던 지축이 안정되자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펼친 방어막을 해제하고, 자신들의 앞에 쓰러져 있는 가이오몬을 살펴봤다.
“…아… 윽….”
현재 가이오몬의 상태는 온 몸이 만신창이로 피가 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나마 숨은 미약하게 내쉬고 있어서 그들은 알 형태의 회복약을 먹이고, 연고용 회복약을 발라서 상처를 지혈했다.
비록 응급처치이지만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어디선가 나지막하지만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윽…….”
시선을 그쪽으로 던지자 거기에는 가이오몬보단 덜하지만 큰 부상을 입은 블랙오메가몬이 누워있었다. 그들은 블랙오메가몬을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무기를 쥐고 그에게 다가갔다.
이에 블랙오메가몬은 간신히 몸을 반쯤 일으켜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들을 해치우고자 무기를 꺼내고 기다렸다.
“…허장성세(虛張聲勢)는… 그만… 두고… 어서… 오거라…!”
“오냐!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블랙오메가몬의 도발 섞인 말에 나머지 일행은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 필살기를 날리려고 했다.
그 때, 검보라색을 띈 빛이 블랙오메가몬을 감싸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헛, 참나!”
“갑자기 사라져버리다니!”
“그것보다, 가이오몬!!!”
갑자기 사라진 그에 대해 말을 나누며 허탈해하는 그들은 아까보다 상태가 그나마 좋아보이는 가이오몬을 업고 의사가 있을 마을로 향했다.
*
한편 칼립스가 4명의 부하들과 접촉했던 금단의 지역에서 검보라색 빛이 나더니 반쯤 앉아있는 블랙오메가몬이 등장했다.
그는 처음 보는 장소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자 경계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칼립스가 귀신처럼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검을 그에게 겨눴다.
“…날… 이… 곳에… 데려온… 게… 너냐…?”
“맞아. 죽을 뻔한 널 살려줬지.”
“…어째서냐…?”
“지난번의 말을 진짜로 실행시키기 위해서야.”
“…….”
“이제 데몬과 만나지 못할 텐데, 어떻게 하려고?”
“…맹세…, …알고… 있군….”
“어떻게 하겠어? 다시 떠돌다가 다른 세력에 의해서 곤경에 처할래, 아니면 나와 손을 잡고 너만의 쾌락을 즐길래?”
“…난… 네… 부하가… 되는… 건… 싫다….”
“좋아, 그럼 부하가 아닌 동업자, 파트너는 어때?”
“…파트너… 인가? …좋다…. 받아들이겠다….”
블랙오메가몬이 손을 잡겠다고 의사를 밝히자 칼립스는 예상했다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힘으로 블랙오메가몬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했다. 그러고는 뒤에 숨어있는 부하들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뼈가 얼 듯한 찬바람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 불면서, 왜소한 외형의 디지몬이 나타나 칼립스와 블랙오메가몬이 서 있던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역시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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