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자의 이야기 <22>
“으으….”
“우욱!”
“이건 버틸 수가 없군요.”
블랙길몬, 테리어몬, 쟈자몬은 힘겨워하며 간신히 말을 했다.
칭롱몬(청룡몬)의 신전에서 멸망파 로얄 나이츠와 싸우고 위그드라실이 만들어낸 블랙홀에 휩쓸렸었다. 그때 율릭이 미스틱 아츠를 사용했는데 그 덕분인지 파트너 디지몬 셋은 부상을 입지 않았다. 이는 7대 마왕 중 하나이자 율릭과 동행하고 있는 베르제브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치지는 않았잖아. 아참, 율릭은?”
“나 여기 있어.”
“……맙소사.”
“회복 중이니까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디지몬들이 본 율릭의 몸 상태는 심각했다. 비록 아카식 레코드에게 선택받아 늙지도 죽지도 않지만 상반신은 살이 찢기고 피멍이 들었고 하반신은 소멸해서 절단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든 통각을 마비시켜 고통이 느껴지지 않게 한 율릭은 마법을 사용하여 손실된 부위를 서서히 재생시키고 있었다.
“마취를 풀고, 바지와 신발을 다시 만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끝.”
“뇌리에 박혀서 잊히지 않을 것 같군.”
“이걸로 세 번째인데 더 이상 안 죽는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익숙해져야만 돼.”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디지털 월드는 아닌 것 같아.”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살았던… 입니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구름에 맞닿을 정도로 우뚝 솟은 산이며 동서남북이 4개의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파트너 디지몬 셋은 물론이고 베르제브몬마저 처음 보는 장소인지라 당혹을 금치 못했다. 율릭은 회복에 집중하느냐고 이곳이 어디인지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그제야 의문을 가지고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했다.
“여기는 윗체르니의 브로켄 산이야.”
“우리가 다른 차원의 디지털 월드에 온 거라고?”
“블랙홀에 미스틱 아츠를 걸었더니 웜홀로 작용한 것 같아.”
“돌아갈 수 있을까?”
“위그드라실이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면 가능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십중팔구 위그드라실이 대처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 율릭은 「슬링 링」을 소환해서 왼손에 착용했다. 그 후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을 빙글빙글 돌려 「게이트 웨이」를 형성했다. 그런데 「게이트 웨이」를 유지하는 엘드리치 라이트가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충격파를 일으키며 사라져버렸다.
“음! 이러면 곤란한데.”
“빌어먹을 위그드라실이 개수작을 부린 모양이군.”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주위에서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쟈자몬의 말에 블랙길몬은 손톱을 앞세웠고, 테리어몬은 두 귀를 들어 올렸고, 율릭과 베르제브몬은 「지퍼스 크리퍼스」와 「베렌헤나」를 꺼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자몬, 위치몬, 소서리몬, 프레이위자몬(화염위자몬) 같은 마인형 디지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를 마주 보며 자연스럽게 대치 상태로 돌입하는 와중에 어디선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디지몬 하나가 착지하며 나타났다. 그는 적색 망토를 걸치고, 녹색 문양을 붙이고 화려하게 장식한 갑주를 입고, 도끼처럼 생긴 금색의 창을 손에 쥐고 있었다.
“산 아래에서 이질적인 마법이 느껴져서 와봤더니 인간 한 명과 디지털 월드에서 온 디지몬들이 있을 줄이야.”
“너는 내가 아는 듀크몬이 아니로군.”
“나는 메디벌듀크몬이다. 윗체르니를 수호하고 있지.”
“그쪽이 자기소개를 했으니 이번엔 우리가, 내가 대표로서 설명하겠어.”
머스킷 형태의 두 자루 권총, 「지퍼스 크리퍼스」를 거두어들이고 앞으로 나선 율릭은 수월한 설명을 위해 「타오 만다라」로 환영을 만들어냈다. 베르제브몬과 파트너 디지몬 셋을 소개하고 나서 자신이 누구인지, 디지털 월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쩌다가 윗체르니로 이동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했다.
“위그드라실이 대처를 해놔서 우리는 디지털 월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어.”
“…내가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로군. 각 종족의 장(長)과 종족을 통솔하는 평의회의 장(長)인 현자 디지몬 셋과 의논을 해야겠다.”
“그럼 우리도 참석해도 될까? 설명도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운 편이거든.”
“군손님이지만 정중하게 데려다주지.”
“지금 이게 호위를 하는 건지 호송을 하는 건지 헷갈리네.”
메디벌듀크몬이 앞장을 서고 마인형 디지몬들이 율릭, 파트너 디지몬 셋, 베르제브몬을 둘러싸고 브로켄 산 정상에 존재하는 마법학원으로 이동했다. 이에 테리어몬이 농담하듯이 지적을 했으나 윗체르니 측은 못 들은 척했고, 디지털 월드 측은 고개를 끄덕였고, 율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모두 침묵을 지키며 등산을 했고 얼마 있다가 마법학원에 도착했다.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디지몬들이 마법(고급 프로그램 언어)을 배우고 있는데 밖에서는 실습을 주로 하고 안에서는 이론을 주로 했다.
“나도 마법을 습득하고 다른 이들에게 전수해줬었지.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산허리에 있을 때 선보였던 그 마법 말인가?”
“아카식 레코드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수련해서 얻은 오리지널이야.”
“지구에서는 그대가 마법의 시조인 셈이로군.”
“미스틱 아츠/신비학을 기준으로 하면 그럴지도.”
율릭과 메디벌듀크몬이 대화를 나누면서 이동한 덕분인지 그들은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흙의 아슬린족, 물의 아쿠에리족, 불의 에네르쥬족, 바람의 바루루나족을 대표하는 우두머리 넷과 평의회에 속한 현자 디지몬 셋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일곱 디지몬이 설명을 요구하기 전에 율릭은 다시 한 번 미스틱 아츠를 동원해서 일종의 시청각 설명회(프레젠테이션)를 했다. 다행히 저들은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잘 설득한다면 협력 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율릭이 입을 열려고 했다.
“잠시만 기다려주겠나.”
“누구신지?”
“나는 헥세블라우몬. 메디벌듀크몬과 마찬가지로 윗체르니를 수호하는 디지몬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너희들, 특히 율릭과 싸우면서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다.”
“그런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어.”
“잠깐! 헥세블라우몬 혼자서는 너희 다섯을 상대하기 어려우니 나도 참전하겠다.”
헥사블라우몬… 몸 여기저기에 얼음이 돋아나 있고 파란색 갑주를 입은 마법기사형 디지몬이 등장하면서 본의 아니게 율릭의 말을 막아 버렸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율릭은 협력 관계를 맺기 위해서 헥세블라우몬은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대련하기로 했다. 형평성을 고려해서 메디벌듀크몬이 헥세블라우몬을 돕기로 한 것은 덤이었다.
그러나 방 안에서 싸울 수는 없으니 모두 밖으로 나갔다.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가장 넓은 훈련소에 도착하자 율릭은 파트너 디지몬 셋을 궁극체로 진화시킨 다음에 후드를 망토로 바꾸고 「지퍼스 크리퍼스」를 재소환했다. 베르제브몬은 율릭의 옆에 서서 메디벌듀크몬을 향해 「베렌헤나」를 겨눴다.
“네가 어느 정도 강한지 확인해봐야겠다.”
“카오스듀크몬은 베르제브몬과 함께 싸우고, 메탈릭드라몬은 나와 함께 싸우고, 세인트가르고몬은 후방에서 우리를 지원해줘.”
“알았어.”
“맡겨달라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도 전력을 다해 싸우마!”
이리하여 율릭과 메탈릭드라몬, 베르제브몬과 카오스듀크몬, 그리고 세인트가르고몬 대 헥사블라우몬과 메디벌듀크몬의 대련이 펼쳐졌다.
먼저 베르제브몬이 메디벌듀크몬에게 총격을 가했다. 메디벌듀크몬은 바람의 마술을 부려 「베렌헤나」에서 발사된 탄환을 헛맞게 만들더니 카오스듀크몬과 각자의 마창을 맞부딪쳤다. 한자로는 魔槍으로 같지만 영어로는 Demonic lance와 Magic lance라는 차이가 있다.
「파이널 크레스트」
「데몬즈 디자스터」
「카오스 플레어」
세 디지몬은 필살기를 사용하지 않고 병기(兵器), 마술(魔術), 무예(武藝)로 싸웠다. 그러던 중에 메디벌듀크몬이 마무리를 지을 생각인지 필살기를 사용했다. 「듀나스」를 한 번 저어 돌풍을 일으키더니 날카로운 칼처럼 바꿔서 카오스듀크몬과 베르제브몬에게 날렸다.
그와 동시에 카오스듀크몬은 「발뭉」으로 강력한 연타 공격을 퍼부어 돌풍을 없앴다. 이어서 베르제브몬은 블래스트 모드로 형태를 바꾸고 오른팔에 장착된 「블래스터」로 역오망성의 마방진을 그리더니 그 중심에서 검붉은 파괴의 파동을 발사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한 메디벌듀크몬은 마창 「듀나스」의 끝에 달려있는 수정에서 용 모양의 에너지를 발사하는 「레이지 오브 와이번」으로 대응했다. 두 개의 필살기가 충돌하면서 큰 폭발을 일으켰고 베르제브몬 블래스트 모드와 메디벌듀크몬, 「고르곤」을 앞에 내세운 카오스듀크몬이 뒤로 밀려났다.
“얼어붙어라.”
“녹여야겠군.”
율릭이 「지퍼스 크리퍼스」의 방아쇠를 당겨 탄환을 발사했으나 헥세블라우몬에게 닿지 못하고 동결되었다. 광범위로 냉기를 둘러 접근하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얼음 조각으로 만드는 필살기, 「서먼 프로스트」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율릭은 다른 차원의 마법, 「블래스트 붐[暴爆呪]」를 발동했다.
「블래스트 붐」은 제작자만이 사용 가능할 정도로 마력을 많이 소모하고, 마력 증폭 수단이 있더라도 원본과 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결정적으로 아카식 레코드로 복사했기에 위력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나마 헥세블라우몬의 「서먼 프로스트」를 무효화하는 데 성공해서 제 역할을 다했다.
「헥토 엣지 블리자드」
「레이저 사벨」
「자이언트 미사일」
얼음 마술(고급 프로그램 언어)의 전문가인 헥세블라우몬은 냉기를 조종해서 검이나 망치 같은 도구로 공격하거나 상대의 움직임을 구속하고 결계를 만들어내어 자신을 보호했다. 그러나 율릭이 미스틱 아츠로, 메탈릭드라몬이 꼬리의 레이저 건으로, 세인트가르고몬이 「버스트 샷」으로 대응하자 무수한 빙검을 눈보라처럼 내리게 하는 두 번째 필살기를 두 번째 필살기를 사용했다.
이에 율릭이 「타오 만다라」를 전개하여 무수한 빙검을 옥색의 나비 떼로 바꿔버렸다. 그 순간 빈틈이 보이자 메탈릭드라몬이 꼬리의 레이저를 검으로 고정시키고 고속 돌격해서 베어버렸고, 세인트가르고몬이 양 어깨의 포탑에서 메가톤급의 거대 미사일을 발사했다.
「앱솔루트 블래스트」
「상급 마법 무효화(Dispel Magic, Greater)」
위기에 처한 헥세블라우몬은 왼쪽 어깨에 있는 용의 턱에서 절대영도의 파동을 발사하는 마지막 필살기를 사용했다. 현재 메탈릭드라몬과 세인트가르고몬은 보호 주문의 영향을 받고 있으나 혹시라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에 율릭은 일정 범위 안에 있는 마법적 효과를 제거하는 주문으로 대처했다.
필살기가 약화되면서 두 디지몬이 부서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자이언트 미사일」은 얼어붙어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지만 메탈릭드라몬은 추위를 참아내고 헥세블라우몬의 갑옷에 흠집을 남겼다.
“제법이군.”
“우리는 디지털 월드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율릭이 있으니 쉽게 당하지 않아.”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아무튼 대련을 계속할지 아니면 멈출지를 정했으면 좋겠어.”
율릭의 말에 헥세블라우몬은 잠시 고민하더니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을 소멸시켰다. 대련을 마치겠다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며 베르제브몬, 카오스듀크몬과 싸우고 있던 메디벌듀크몬도 마창 「듀나스」를 거꾸로 쥐면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이번에도 경험을 쌓은 카오스듀크몬은 상대에게 예를 갖추고 난 뒤 율릭의 곁으로 이동했고, 메디벌듀크몬과 더 싸우고 싶었던 베르제브몬은 아쉬움을 드러내며 조금 늦게 합류했다.
“디지털 월드는 위그드라실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고 했지.”
“이렇게 된 이상 잠시 딴 길로 새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도와줬으면 좋겠나?”
“그에 관해서는 회의실 안에서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질적으로 윗체르니를 관리하는 일곱 디지몬에게 존대의 말을 쓴 율릭은 장소를 옮길 것을 요청했다. 그들은 율릭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라 눈치를 채고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그런 다음에 메디벌듀크몬과 헥세블라우몬을 동행시키면서 율릭, 파트너 디지몬 셋, 베르제브몬과 함께 회의실로 이동했다.
[후기]
상급 마법 무효화(Dispel Magic, Greater)는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