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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베이스.
디지털 월드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인 이그드라실이 만들어낸 성기사형 디지몬들의 집단, 로얄 나이츠의 전용기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따로 본거지를 두고 있는 그들이 모여서 지내는 중간기지로 본래 이름이 없었으나 로얄 나이츠의 시조인 임페리얼드라몬(팔라딘 모드)이 이그드라실과 의논한 끝에 저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데몬이나 리리스몬의 성과는 달리 밝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이곳에서 제일 고요한 예배당에 한 명의 천사형 디지몬이 무릎을 꿇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이곳에 공중비밀기지(空中祕蜜基地)를 마련하면서 그 대가로 로얄 나이츠의 기지를 순찰하는 타이거베스퍼몬들은 오늘도 철두철미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데, 그 누구도 천사형 디지몬이 예배당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쨌거나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뒤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나자 몸을 뒤로 돌렸다.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햇빛이 들어와 내부를 환하게 비춘 탓에 헛기침을 한 자의 모습이 환식하게 드러났다.
붉은색 망토와 흰색 갑옷, 그리고 가슴에 새겨져 있는 디지털 해저드(Digital Hazard)… 천사는 맞은편에 있는 기사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붉은 마룡(魔龍)의 기사 듀크몬.”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그나저나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치천사(治天使) 세라피몬.”
“기도 좀 하려고 왔습니다.”
“네 성에도 예배당이 있던 것 같은데?”
“현재 공사 중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의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도 색달라서 좋지 않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특이한 건 여전하구만.’
“…그리고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직접 올 정도라면 큰일인가 보지?”
“가이오몬에 대해서 입니다.”
세라피몬의 입에서 가이오몬의 이름이 나오자 듀크몬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게… 데몬에게 쫒기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아?”
“베르제브몬을 알고 있습니까?”
“잘 알고 있지.”
“현재 베르제브몬은 7대 마왕의 지위를 던져버리고 방랑 중인데, 도중에 가이오몬과 만났다고 합니다.”
“혹시 그와 관련돼서 데몬이 후환을 없애기 위해 베르제브몬과 가이오몬에게 수를 쓴다는 건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뭐지?”
“알면서 모르는 척 하시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우리들은 『그 사건』으로 인해 당분간 재기불능이야.”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겁니까? 이럴 때 『그』라도 있었다면…….”
“『그』는 기다릴 수가 없지. 그건 그렇고 너도 좀 바빠 보이는 것 같은데.”
“아아, 다만 좀이 아니라 너무 바쁘다고 말해야 합니다.”
듀크몬과 세라피몬이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문 근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름답지만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자 세라피몬은 워프 게이트를 열어 성으로 돌아갔다.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황급히 가버렸지만, 듀크몬은 그의 심정을 이해하고는 속으로 기도를 했다. 잠시 후에 소리가 멈추고 문이 열리더니 분홍색 갑주를 두른 아름다운 기사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행방을 알아냈어.”
분홍색 기사의 말에 듀크몬은 기도를 멈추고는 가까이 다가가 귀엣말을 했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속삭이던 듀크몬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예배당을 나갔고, 혼자 남은 분홍색은 기사는 장미잎을 꺼내 공중에 뿌리고는 우아하게 회전하면서 사라져버렸다.
*
딥 세이버즈(DS).
춘추전국시대 때에는 거대한 해상국가였으나 지금은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린 지역으로 가이오몬 일행은 리리스몬과의 조우한 이후,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이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바다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작 지리를 몰라서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가이오몬은 로얄 베이스에 있었을 뿐이었고, 판쟈몬(화이트레오몬)은 네이처 스피릿츠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베르제브몬이 10여 년 동안 방랑을 하면서 여러 지역을 둘러봤지만, 이곳은 처음이라 소용이 없었다.
결국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정면으로 걸어갔고, 어느새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아직 마을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중간에는 이르렀을 때,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숨어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 얼른 나와라!”
베르제브몬이 사방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치자 숲에서 암살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데비드라몬(데블드라몬) 20마리, 데비몬(데블몬) 20명, 검은 워가루루몬(워가루몬) 20명으로 이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디지몬 셋은 가이오몬 일행을 보며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너희들은?”
“오랜만입니다, 베르제브몬님.”
“…누구신지?”
“접니다! 레이디데비몬(레이디데블몬)이요!”
“아! 난 또 누군가 했지. 리리스몬의 보좌관으로 들어올 당시에는 코흘리개 꼬맹이였는데, 어느새 많이 성숙해졌군. 근데 옆에 있는 놈들은 누구냐?”
“동료입니다. 왼쪽에 있는 녀석은 베리알반데몬(베리알묘티스몬)님의 직속부하인 반데몬(묘티스몬)이고, 오른쪽에 있는 분은 데몬님이 고용한 용병 고쿠몬씨입니다.”
“여기 온 이유는 데몬의 명령을 받들어서 나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을 죽이려고 온 거겠지?”
“……예.”
“어이! 왜 우리 둘을 나머지라고 호칭하는 걸까?”
“말실수를 했으니 좀 봐줘.”
“뭐, 양해해주지. 이제 저 녀석들을 상대해볼까?”
“그러자고.”
베르제브몬과 가이오몬, 판쟈몬이 차례대로 말을 하고 나서 전투태세를 갖추자 데비드라몬, 데비몬, 검은 워가루루몬이 선제공격을 가했다. 이에 그들은 가볍게 피하면서 반격을 하는데, 데비드라몬과 데비몬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검은 워가루루몬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였다.
예상외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무효로 만들자 가이오몬 일행은 순간 당황했고, 레이디데비몬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이끌고 온 부하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사실 저들은 리리스몬님과 베리알반데몬님에게 특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실력이 많이 향상됐지요.”
“그래? 거참 철저하게 준비했군. 후후후~”
베르제브몬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자 몸에서 보랏빛 기운이 감돌았고, 농도가 점점 짙어질수록 그의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날개가 완전히 나타나고 있는데, 갑자기 네다섯 마리의 데비드라몬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지상으로 추락했다.
데비드라몬들이 괴로워하면서 비명을 지르자 베르제브몬은 날개를 거두고는 가이오몬, 판쟈몬과 함께 화살이 날아온 곳을 응시했다. 거기에는 망토처럼 생긴 날개를 지닌 전사형 디지몬 한 명이 어깨에 금색 부엉이를 얹고, 오른손에 석궁을 든 채로 서 있었다.
“넌 누구냐?”
“…발키리몬.”
“바, 발키리몬이라고!?”
“고쿠몬. 저자에 대해 뭐 아는 거라도 있나요?”
“알지. 그는 원드 가디언즈(WG)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 중에 하나였어.”
“…예!?”
고쿠몬의 말에 레이디데비몬과 반데몬을 비롯한 암살자들은 경악을 하며 소리쳤다. 가이오몬 일행은 그들과는 달리 경악을 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발키리몬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감정을 진정시키자 발키리몬은 가이오몬에게 다가가더니 그들과 함께 전투 자세를 취했다. 이에 깜짝 놀란 가이오몬이 발키리몬에게 질문을 했다.
“왜 이쪽으로 온 거지?”
“이유는 나중에 말하고 싶군. 우선 저 녀석들을 해치우고 나서 말이야.”
“그래? 그렇다면 빨리 처리해야겠군.”
“내가 먼저 하지!”
「냉기공파참」
「펜리르 소드」
「더블 임팩트」
「린화참」
판쟈몬이 자신의 냉기를 모두 모았다가 방출하고, 발키리몬이 허리에 찬 검을 뽑아 암살자들을 베어버리자 모두 얼어붙어 생명이 멎어버렸다. 그 뒤를 이어 베르제브몬이 「베렌헤나」의 방아쇠를 당겨 발사한 총알과, 가이오몬이 「국린」으로 일으킨 빛의 궤적이 얼음이 된 암살자들을 모조리 박살내버렸다.
레이디데비몬, 반데몬, 고쿠몬은 알(디지타마)조차 남기지 못한 채 소멸하는 부하들을 보고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셋 중에서 두 보좌관은 완전체이지만 전력을 다하면 궁극체에 준하는 수준이고, 고쿠몬은 나름 한 실력 하는 디지몬이다.
그러나 상대 역시 보통이 아닌데다가 유일한 완전체인 판쟈몬도 마음만 먹으면 궁극체 수준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가이오몬 일행이 신경을 쓰지 않자 살금살금 뒤로 물러나다가 도망치듯 후퇴를 했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으로 싸움이 일단락되고, 무기를 거둔 가이오몬 일행은 발키리몬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 이제 그 이유를 말해줬으면 하는데.”
“…좋아.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겠지.”
“잠깐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판쟈몬?”
“이왕이면 숙소에서 듣고 싶어. 더 이상은 못 버텨!”
“아차, 너의 결벽증을 잊을 뻔 했군.”
“여기 근처에 내가 머물고 있는 여관이 있는데, 거기로 가겠나?”
“마침 잘 됐군!”
“안내를 부탁하지.”
결벽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판쟈몬을 진정시키며 발키리몬의 안내를 받아 여관으로 향하는 가이오몬과 베르제브몬.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싸움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
나이트메어 솔져스(NSo).
“하아….”
외딴 성 안에서 누군가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이 성의 주인인 무르무크스몬(무크스몬)으로 전에 데몬에게 살해 사건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데몬의 명령을 받들어 열심히 조사를 해봤으나 증인이 없고, 증거 또한 부족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포기한다면 다른 마왕들 -특히 베리알반데몬- 에게 비웃음을 당할 테고, 그렇다고 계속한다면 머리가 터질 정도의 두통을 겪을 것 같았다.
그나마 조사에 협박하는 데스몬이 위로해준 덕분에 안정을 되찾은 무르무크스몬은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성벽이 파괴되자 깜짝 놀랐다.
“무,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나가서 확인을 해봐야겠군.”
데스몬의 말에 정신줄을 놓을 뻔했던 무르무크스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파괴된 성벽으로 향한 두 마왕은 직속 부하들이 팔다리가 잘린 상태로 괴로워하는 상상 이상의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데스몬과 무르무크스몬은 정체불명의 디지몬이 나타나자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부상을 입은 자들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가 빼고는 죽은 시체에 난도질을 해버렸다. 차마 제정신으로 봐줄 수 없는 잔학무도한 행동에 두 마왕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노려봤다.
“데스몬. 내가 저 자를 상대하고 있을 테니 데몬님을 불러와.”
“혼자서 괜찮겠나?”
“혼자는 아니니까 쓰러트리지는 못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알았다. 부디 조심하도록.”
데스몬이 워프 게이트를 열어 데몬의 성으로 가자 무르무크스몬은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 뒤에 땅이 흔들리더니 거대한 새가 두 날개를 펄럭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저 디지몬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오니스몬으로, 무르무크스몬은 정체불명의 디지몬과 싸우기 위해 등 위에 올라탔다. 그걸 본 그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며 말을 했다.
“…네가… 나와… 싸우겠다고…?”
“그렇다!!!”
“…어리… 석은… 놈…. …좋다… 덤벼라…!”
“그 전에 너의 이름을 듣고 싶다.”
“…내… 이름…? …좋다…, …알려… 주마…! …내… 이름은…….”
*
다크 에리어(DA), 데몬의 성.
“데몬님-!!!!!”
“무슨 일이냐?”
차를 마시며 일을 하고 있던 데몬은 황급히 뛰어 들어오는 데스몬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무르무크스몬의 성에 누군가가 침입했습니다.”
“그들인가?”
“아닙니다. 다른 자입니다.”
“알았다. 지금 바로 가지.”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데몬은 워프 게이트를 형성하고는 데스몬과 함께 무르무크스몬의 성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의 성에 도착한 데몬과 데스몬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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