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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의 성 근처의 언덕.
가이오몬 일행과 데몬의 싸움이 시작되기 몇 십 분 전. 아무도 없는 이곳에 워프 게이트가 열리며 두 명의 디지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오라클이라 불리는 바바몬(할매몬)이고, 다른 한 명은 밝은 회색 계통의 갑옷에 푸른색 망토를 두른 기사형 디지몬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구먼.”
“예, 그런데 저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영 꺼림칙합니다.”
“그러면 날 따라오지 않았으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려고 했지만… 막상 잘 안 되더군요.”
“어쩔 수 없는 필연, 인가.”
“예? 지금 뭐라고…….”
“아무 것도 아닐세. …음, 이제 시작하려고 하는 것 같구먼.”
그녀의 말에 회색 기사는 데몬의 성을 바라봤다. 개방된 곳을 통해 바라본 성 안에서 가이오몬 일행과 데몬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빠르면서도 왠지 느리게 느껴지는 속도로 상대의 근처까지 접근하던 그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서더니 본인들의 공격을 데몬에게 날렸다.
「가이아 리액터」
「더블 임팩트」
「수왕 한빙시(獸王寒氷矢)」
「프리즈 스피어즈(Freeze Spears)」
「포지트론 레이저」
「아젠트 피어」
“합-!!!”
「어비스 실드(Abyss shield)」
기습적으로 펼친 가이오몬 일행의 공격이 데몬을 향해 날아오자, 그는 칠흑처럼 어두우면서 약간의 밝은 빛을 띠는 방어막을 펼쳤다.
그들의 기술이 데몬의 방어막에 부딪치자 엄청난 소음과 함께 사라졌고, 그로 인해 생긴 먼지로 시야가 가려지자 데몬은 방어막을 해제했다. 그러고는 「흑염」을 쥔 손에 힘을 주고는 고속으로 이동해 가이오몬 일행의 근처까지 다다랐다.
「보살흑영참(菩薩黑影斬)」, 「반월수라참(半月修羅斬)」
「더블 에너지 배리어(Double Energy Barrier)」
「로즈 오브 실드(Rose Of Shield)」
데몬은 잔상만이 보일 정도의 속도로 흑염을 휘두른 후에 반월 형태의 검보라색 기파를 가이오몬 일행에게 날렸다. 그러나 미스티몬과 로드나이트몬이 전력으로 방어막을 쳐 막은 덕에 그들은 피해를 받지 않았다.
“으음! 이거 여간내기가 아니군.”
“상대는 7대 마왕 중 하나이면서 수장이니까.”
“…그저 『임시』일 뿐이다.”
베르제브몬의 말에 답하듯 말한 데몬은 미스티몬과 로드나이트몬의 방어막을 깨기 위해 다시 한 번 흑염을 휘둘렀다. 물론 그 전에 파이터 모드로 변형한 라스트(임페리얼드라몬)가 팔의 손톱으로 「흑염」을 쳐서 데몬의 공격을 무효화시켰지만 말이다.
“호오, 제법이군.”
“뭘 이 정도 가지고.”
「빙수권」
「아울반딜의 화살」
라스트와 데몬이 서로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면서 말을 주고받을 때, 판쟈몬(화이트레오몬)과 발키리몬이 자신의 필살기를 데몬에게 날렸다. 그 둘의 필살기가 데몬에게 닿을 때쯤에 데몬은 왼쪽의 도끼로 라스트의 팔의 손톱을 막고 오른쪽의 도끼로 둘의 필살기를 무효화했다.
그 순간 데몬을 향해 가이오몬이 「국린」을 활 형태로 변화시켜 화살 형태의 에너지를 날리고, 베르제브몬이 「베렌헤나」를 쏘고, 미스티몬이 「화룡검」과 「빙룡검」을 휘둘러 에너지파를 날리고, 로드나이트몬이 「파일 벙커」와 금속제 리본을 휘둘렀다. 다섯 명의 공격과 나머지 세 명의 뒤이어서 연합 공격을 하자 데몬은 「흑염」과 자신의 기술을 이용해서 공격과 방어를 병용했다.
“큭! 이래가지고는 타격을 줄 수가 없어!”
“그 말에 동의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 둘 수는 없잖아?”
“음, 이를 어쩐다?”
가이오몬은 그가 먼저 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데몬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몇 분은 사치이므로 몇 초 동안 머리를 굴리던 가이오몬은 나머지 일행들과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꼬나 쥐었다.
“아직도 싸울 생각인가?”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는 없거든.”
“그리고 너로 인해 생긴 이 원한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와라. 우리 둘 중에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워보자!”
“간다!!!”
데몬의 말에 가이오몬 일행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다시 한 번 그에게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허나 데몬 역시 그들이 흩어짐과 동시에 몸을 움직여 공격 시도를 불발로 만들었다.
그 때, 판쟈몬과 발키리몬이 그의 빈틈을 노려 자신들의 기술을 날렸다. 이동 중에 그들이 공격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데몬은 황급히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탓에 약간의 타격을 받았다.
“윽!”
“일단 성공했군.”
“훗, 겨우 이 정도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아니, 하지만 타격은 줄 수 있지.”
“과연… 그렇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한 데몬은 저 둘의 공격으로 인해 약간 찢어진 로브를 벗어버렸다. 그 동안 로브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데몬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두 자루의 「흑염」이 가이오몬들을 향해 날아왔다.
가이오몬 일행은 자신들의 몸에 흑염이 닿기 전에 얼른 피했으나 「흑염」이 궤도를 꺾으면서 그들을 쫓자 흩어져서 한 번 더 피했다. 그 때, 등 뒤에서 싸한 느낌이 들자 황급히 뒤돌았는데, 갑자기 외마디 신음을 토하며 고꾸라졌다.
“크윽!”
“이걸로 아까 당한 것은 갚은 셈이다.”
가이오몬 일행은 땅바닥에 쓰러지자마자 바로 일어섰는데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위쪽으로 향했다. 위에는 하나의 인형이 공중에 떠 있었는데, 한 쌍의 검보라색 날개와 오른팔보다 가늘고 긴 왼팔, 그리고 야수와 같은 악마의 모습을 한 디지몬이었다.
“서, 설마……?!”
“드디어 로브를 벗으셨군. 데몬!”
“아아, 그래. 정말 오랜만에 말이지.”
데몬은 그 동안 입고 있었던 로브를 보고 조금은 씁쓸한 듯한 말투로 말하면서 손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땅바닥에 박혀 있던 「흑염」이 진동을 하더니 데몬의 양 손으로 옮겨졌다.
“자, 그럼 제 2 라운드를 시작해 볼까?”
“바라던 바다!”
가이오몬 일행의 선언과도 같은 외침에 「흑염」을 쥔 채 손목을 풀고 있던 데몬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속으로 이동하여 「흑염」으로 그들을 찍고, 베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선공을 가하자 데몬은 뒤로 피하면서 「흑염」을 그들에게 던졌다. 그들이 「흑염」을 피할 때, 빈틈을 노려 공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라스트와 로드나이트몬이 「흑염」의 손잡이를 잡은 뒤 땅바닥에 깊숙이 박고, 판쟈몬과 발키리몬이 검을 휘두르자 생각을 바꿔 행동했다.
이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검은 화염을 휘감은 왼손으로 판쟈몬의 검을 잡았다가 밀치고, 발로 발키리몬의 검을 후려쳐서 그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또 오른손으로 먼지를 일으켜서 나머지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양쪽 다 서서히 지쳐가고 있을 때, 갑자기 데몬이 뒤로 물러서며 「흑염」을 아공간 안에 집어넣었다.
“이대로 싸움을 계속해서 체력을 소모하느니, 차라리 한 방으로 끝을 내주도록 하지.”
“좋다, 그러면 우리들도 똑같이 대응해 주마!”
가이오몬 일행은 데몬의 말을 맞받아치며 각자의 기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에 데몬도 양 손을 모아 암흑의 구체를 형성하고는 더욱 더 크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농구공 크기였다가 이제는 성이 흔들릴 정도로 커버리자 데몬은 그것을 제어하려는 듯이 양 손에 힘을 가했다. 몇 분 후, 구체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원래의 반 정도로 작아지자 그것을 바로 가이오몬 일행에게 던지듯이 날렸다.
「다크 노아(Dark Noah)」
「린화참」
「카오스 플레어」
「빙수신장(氷獸神掌)」
「골드 크래쉬(Gold Crash)」
「더블 드래곤 블래스터(Double Dragon Blaster)」
「기가 데스」
「로즈 샷(Rose Shot)」
암흑의 구체가 데몬의 양 손에 떠남과 동시에 가이오몬 일행도 준비한 필살기(오의)를 방출했다. 암흑의 구체와 하나로 합쳐진 그들의 기술이 부딪치자 시간이 정지된 듯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러나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근처에 있는 모든 것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이 사라져가자 가이오몬 일행과 데몬은 방어막을 치면서 뒤로 물러났다. …라고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파괴의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그들은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암흑 구체의 안에 휩쓸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암흑 구체가 사라지며 가이오몬 일행과 데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들의 몸은 크고 작은 상처로 도배되어 있었고, 극도로 지쳐 있었지만 정신력으로 지탱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윽…, 방어막으로 막았어도… 결국 소용이 없었나?”
“…제법이군, 네 놈들. 허나… 끝을… 내주마!!!”
데몬은 아공간에서 「흑염」을 꺼내 길이를 늘이고는 지팡이로 삼아 느린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한참 멀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거의 반쯤 다다랐을 때, 빈손에 화염 덩어리를 만들고는 가이오몬 일행에게 던지려고 했다. 그 순간 목에서 통증이 느껴지며 비릿한 냄새가 나자 화염 덩어리를 소멸시키고는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으윽… 하필 이럴 때… 쿨럭, 쿨럭!”
데몬은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기침을 연달아 하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손을 치웠다. 그런데 손에 검붉은 피가 흥건히 묻어있는 것을 보고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가이오몬 일행은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
“그 역시 부상을 입었군.”
“우리들이 힘을 합쳐서 친 방어막으로도 완전히 막지 못했는데… 혼자서는 무리가 있겠지.”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이런 상태로는 공격도, 방어도 하지 못해…….”
“그것은 데몬도 마찬가지야.”
가이오몬 일행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동안, 데몬은 힘겹게 일어나서 다시 한 번 그들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침이 재발되면서 검은 피를 계속 토하자 땅바닥에 편하게 앉아 기침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한 십여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기침 횟수가 줄어들고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때, 가이오몬들과 데몬 사이에 워프 게이트가 생성되더니 그 안에서 디지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 장의 날개에 보라색 옷 그리고 뛰어난 미모와 금빛의 손톱을 지닌 그는 7대 마왕 중에 하나이자 데몬의 여동생인 리리스몬이었다.
“오라버니-!”
“리리스몬… 네가 여긴 왜……?”
“이제 그만해요! 몸도 안 좋잖아요!!”
“…….”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데몬이 무슨 병이라도 걸렸다는 건가?”
미스티몬이 베르제브몬의 말을 이어서 말하자 데몬과 리리스몬은 입을 다물었다. 남매 관계인 두 마왕의 반응에 그들은 미스티몬의 말이 사실일 거라고 추정은 했으나 본인의 입에서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정 짓지는 않았다.
“그들이 어느 정도 눈치 챘나 봐요.”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숨길 필요도 없겠지.”
“……제가 말할까요?”
“아니다. 나와 관련된 것이니… 내가 밝히는 게 옳을 것 같구나.”
데몬은 리리스몬과의 대화를 하고 나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 뒤에 가이오몬 일행을 바라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 리리스몬이 한 말의 의미를 알고 싶으냐?”
“물론이다!”
“……좋다, 가르쳐주마. 아까 저 녀석이 말한 대로 나는… 나는 지금 병중에 있다.”
“뭐, 뭐, 뭐라고?!”
“그런…….”
“…사실이야. 내가 직접 목격했어.”
가이오몬 일행은 설마 했던 것이 리리스몬의 증언에 사실로 드러나자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본 데몬과 리리스몬은 어느 정도 짐작을 했는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심은 그것과는 정반대일 것이다.
양쪽이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침묵을 유지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큭.”
“웬 웃음소리지?”
“설마… 그 놈인가?”
데몬이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 사악함이 느껴지는 웃음 소리가 그치더니 그들의 앞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칼립스’라고 밝혔던 그는 그들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마치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여긴 웬일로 온 거냐?”
“이런이런,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그러면 안 되지.”
“우리가 그렇게까지 친한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 않나?”
“음, 맞는 말이야.”
그는 데몬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허공에서 카드뭉치를 소환했다. 가이오몬 일행은 그가 자신의 무기를 꺼내는 것을 보고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호오! 그 상태로 나와 맞서겠다는 건가?”
“죽고 싶진 않아서 말이지.”
“그렇다면 표적을 바꿔줘야겠군.”
입가에 비웃음을 띠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한 그는 손에 쥐고 있는 부채 모양으로 펼친 카드를 휘두르듯이 던졌다.
그의 손을 벗어난 카드들은, 가이오몬 일행에게 향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리리스몬의 부축을 받고 있는 데몬을 향해 날아갔다. 데몬은 여러 장의 카드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망설임 없이 방어막을 쳐서 카드를 막아냈다.
“흥, 잘도 막아냈군.”
“하아, 하아… 이 정도 가지고 날 해치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뭐야? 같은 편을 공격하는 건가?”
“같은 편? 웃기지 마라!”
“맞아. 나나 저 녀석이나 각자의 목적을 위해서 손을 잡았을 뿐이야. 그리고 내가 소기의 목적을 거의 다 이루었으니…….”
“*토사구팽(兎死狗烹), 하려는 거군.”
*토사구팽(兎死狗烹) :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된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빙고! 어차피 너도 때가 되면 날 없앨 생각이 아니었나?”
“그래, 다만 때가 오지 않아서… 네 놈에게 선수를 빼앗겼지만 말이지.”
데몬과 그가 날카로운 가시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본 가이오몬들은 자신들이 소외된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로 여겨 둘을 지켜보았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다툼을 벌린 그와 데몬은 각자의 무기를 고쳐 쥐고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의 대등한 것 같아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데몬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평소 앓고 있던 지병과 가이오몬 일행과의 싸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으윽!”
“후후후, 이제 너도 갈 때가 다 됐군.”
“아직… 아직 멀었다!”
“참 끈질기군. 좋아, 할 수 있으면 해 봐.”
그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무기를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데몬을 향해 몸을 내밀었다. 이에 가이오몬 일행은 수상쩍게 생각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데몬이 믿어줄리 만무하고, 또 믿어준다 하더라도 받아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들은 리리스몬에게 눈짓을 했는데, 마침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리리스몬은 그들의 눈짓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 그는 독사 같은 작자에요. 잘못하면 물려 죽어요.”
“그럴 지도 모르지. 허나 이만한 기회는 다신 오지 않아.”
말리려는 리리스몬과 부추기는 칼립스 사이에서 데몬은 살짝 인상을 쓰더니 갑자기 가이오몬 일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3자의 의견을 확인할 생각인지, 아니면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골치를 앓고 있던 중에 그냥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표정이 리리스몬과 비슷한 것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거절한다.”
“진심인가? 지금 놓치면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텐데.”
“그땐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지.”
“어쩔 수 없지. 지금 생각하게 하도록 해주지!”
데몬의 말에 이어서 그는 한마디 던지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초고속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그가 이동한 뒤, 꺼림칙한 느낌이 든 데몬은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바로 그를 뒤쫓았다.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이동한 데몬은 리리스몬의 앞에 도달하더니 「흑염」을 휘둘렀다.
[챙-!]
“네 놈-!”
“언젠가 후회할 거라고 내가 말했지?”
“…그래, 지금 와서 그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군.”
리리스몬을 급습하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에 데몬과 그는 서로의 무기를 맞대며 싸우고 있었다. 무기가 부딪치면서 불꽃이 튈 정도로 그와 치열하게 싸우는 데몬은 사실상 서 있을 기력조차 없었으나 리리스몬을 지키고자 하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었다.
몇 십 분 후, 데몬은 정신력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것을 느끼고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 때, 그가 카드를 휘두르면서 빈틈을 드러내자 약간 망설였다.
‘분명 틈을 노린다면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반대로 함정일 가능성도 높다는 거지. 허나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나에게 승산은 없다!’
마음속으로 갈등을 하고 있는 동안 그의 공격은 더욱더 거세어져가고, 빈틈 또한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공격을 하느냐, 아니면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 데몬이 선택한 것은 오른쪽 도끼로 그의 카드를 맞받아치면서 왼쪽 도끼으로 그의 어깨를 내리찍는 것이었다.
마치 순두부처럼 부드럽게 안으로 베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이오몬들과 리리스몬은 감탄 대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흑염」에 찍힌 그의 몸에는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았고, 그의 표정이 부상을 입은 디지몬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쿠후후, 걸려들었군.”
[푸슉-!]
“크어억-!!!”
그는 자신의 몸에 「흑염」이 꽂혀있음에도 죽지 않아 당황해하는 데몬을 보고, 입으로는 웃으면서 오른손에 힘을 모으더니 데몬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불의의 공격을 당한 데몬이 비명을 지르며 손에 쥐고 있는 두 자루의 「흑염」을 땅바닥에 힘없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설마… 이런 식… 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이야…….”
“네 재능은 뛰어났지만 결국 내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을 뿐이지.”
“…그런… 가. 결국… 네 놈… 뜻대로…… 된… 꼴이군.”
“그래도 그 동안 날 도와준 공을 생각해서 유언 하나는 들어주도록 하지.”
가슴에 찔러 넣은 손에 조금씩 힘을 주면서 선심 쓰듯이 말하는 그를 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은 데몬.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던 그는 리리스몬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더니 베르제브몬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베르… 제브… 몬!”
“…어어.”
“내… 동생… 리리스몬을… 부탁한다!”
“유언은 그것으로 끝? 그렇다면… 바이-바이(bye-bye)!”
그는 데몬에게 웃는 낯을 보이며 가슴에 쑤셔 넣은 손에 힘을 주고는 그대로 밀어버렸다. 가슴을 관통하여 튀어나온 팔뚝에는 검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데몬은 상처로 인한 고통으로 온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켰고, 그 상태에서 입을 열어 몇 마디 웅얼거리다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동시에 몸의 떨림이 멈추고 미약하게나마 붙어 있던 숨이 끊어졌다.
사망한 것이다.
“오… 오라버니….”
“…데몬”
“이걸로 하나의 인연이 막을 내렸다.”
데몬이 죽고 난 다음에 육체는 사라지고, 데이터가 나와서 알(디지타마)와 디지코드로 나뉘어졌는데, 그는 디지코드 안에 섞인 검은 불순물을 제거하고 나서 디지코드를 흡수했다.
그 후에 남은 알을 보고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발을 들어올렸다.
“잠깐! 뭐하는 짓이냐?!”
“글쎄. 내가 무엇을 하든 너희들이 신경 쓸 바가 아닐 텐데.”
“그건… 아니지!”
“그래, 비록 데몬이 우리들의 적이었지만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는 것을 그냥 둘 수는 없어!”
가이오몬 일행의 반발에 그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발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몸을 뒤로 돌려 발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뒤돌아서더니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이제부터 너희들의 적은 바로 나다. 앞으로 화려하게 상대해 줄 테니 기대하도록 해.”
“휴우~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건만… 어쩔 수 없게 됐군.”
“만약 나와 결판을 내고 싶다면 나의 근거지가 있는 바이러스 버스터즈(VB)로 와라.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뭐, 뭐!? 지금 그 말은…….”
그는 자기가 할 말을 다 하고는 워프 게이트를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에 의문점을 풀기 위해 질문을 하려던 가이오몬 일행은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리리스몬은 알을 품에 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별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별이 떨어지듯이 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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