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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월드.
준과 류이치의 디지몬들, 바알몬을 상대로 싸운 베르제브몬은 피닉스에 의해 옛 나이트메어 솔져스(NSo) 지역으로 옮겨졌다.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두 자루의 샷건(산탄총)인 「베렌헤나」를 거둬들였다.
“이거, 한 방 먹었군.”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본 베르제브몬. 그러다가 아공간(亞空間)에서 축구공 크기의 구슬 하나를 꺼내더니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제브몬의 눈앞에 세 명과 한 마리의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베르제브몬을 보고 입을 열어 말했다.
“어쩐 일로 연락을 했지?”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보군.”
“…우리를 방해할 지도 모르는 자들이 나타났다.”
베르제브몬이 내뱉은 말에 네 마왕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방해꾼이 생긴다면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베르제브몬은 동료들에게 준, 류이치, 피닉스에 관한 얘기를 했고, 어떻게 처리할 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두 애송이와 주변의 디지몬들은 쉽게 죽일 수 있지만… 문제는 여자다.”
“보통 실력이 아니라고 했지?”
“그래. 마치 인간을 초월한 것 같았어.”
“…아스카처럼 말인가?”
디지털 월드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으로 상당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 번이나 이 세계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는데 힘을 보탠 존재를 언급하는 발바몬.
그러나 아스카는 지드밀레니엄몬이 자폭을 하면서 만들어낸 블랙홀 안에 빨려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로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고, 대다수는 그녀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는 베르제브몬도 마찬가지인지라 바알몬의 말이 끝난 뒤에 다소 복잡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아스카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분명 우리들을 방해했었겠지.”
“이런 말은 하면 안 되지만… 아스카가 없어서 다행이야.”
“어쨌든 간에 난 이대로 복귀하겠어. 물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갈 생각이지만 말이야.”
이렇게 해서 회의는 끝을 맺었고, 애초에 참석하지 않은 벨페몬을 제외한 발바몬과 리바이어몬은 통신을 끊었다. 데몬과 리리스몬의 경우 베르제브몬이 눈짓을 해서 남으라는 신호를 보낸 탓에 연결을 유지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바알몬을 찾아냈다.”
“뭐라고요?! 우리 아들을 찾아냈다고요?”
“어디에 있나?”
“그들하고 함께 있어.”
“……예전의 너하고 똑같군.”
“그러게요.”
추억에 잠긴 상태에서 말을 하는 데몬과 리리스몬 남매. 그리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베르제브몬. 세 마왕은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서 연결을 끊었고, 혼자 남게 된 베르제브몬은 「베히모스」를 소환해 위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베히모스」는 이 지역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베르제브몬의 모습 역시 서서히 멀어져갔다.
*
마을.
베르제브몬과 싸운 이후에 여관으로 돌아간 준, 류이치, 피닉스, 바알몬은 하룻밤을 묵었다. 시간이 흘러서 아침이 되자 피닉스가 제일 먼저 일어났고, 바알몬, 류이치, 준이 순서대로 일어났다.
“잘 잤어?”
“예.”
“조금 있다가 식사하고 바로 떠날 거야. 준비하도록 해.”
제일 먼저 밖에 나갈 준비를 마친 피닉스는 두 명의 인간 소년과 한 명의 디지몬에게 말을 하고는 문을 열었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 준, 류이치, 바알몬은 뒤이어서 준비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온 셋은 피닉스가 미리 시켜둔 아침 식사를 먹기 시작했다. 크로스로더에서 디지몬들을 리로드하여 같이 배를 채웠고, 몇 십 분이 흘러서 모든 음식을 먹어치운 그들은 값을 지불하고 나서 여관을 떠났다.
“이제 어디로 갈 거죠?”
“글쎄, 당분간은 정처 없이 떠돌면서 디지몬들을 섭외해볼까.”
“베르제브몬이나 다른 마왕들이 습격해오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가던 그들은 어느새 마을 밖으로 벗어나버렸다. 그 이후에 피닉스가 손가락을 튕겨서 「공간전이」를 사용했고, 주위에 파란색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그들의 모습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윽고 그들은 옛 윈드 가디언즈(WG) 지역에 도착했다. 그것도 예전에 가이오몬의 동료로서 활약한 발키리몬의 고향이자 밀레니엄몬의 난동으로 폐허가 됐고,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들판이었다.
“여기는?”
“한때 마을이었던 곳이야.”
“아무도 없군요.”
“마을이 붕괴된 뒤에 쭉 방치되다가 결국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갔지.”
피닉스의 말에 준, 류이치와 바알몬을 비롯한 여러 디지몬들은 주변을 둘러봤다. 녹색 풀밖에 없는 들판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일단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근처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지자 그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는 외계인처럼 생긴 한 명의 디지몬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냐?”
“난 사이버드라몬이다.”
“내가 아는 사이버드라몬과는 다른 모습인데?”
“일종의 아종(亞種)일지도 모르지.”
“…너희들, 사냥할 맛이 있겠군.”
의미 모를 말을 하면서 주위의 색과 동화해 모습을 감춘 사이버드라몬. 갑작스러운 상황에 디지몬들은 준과 류이치를 감싸며 경계 태세를 갖췄고, 피닉스는 침착하게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더니 빠른 속도로 손을 뻗었다.
“컥-!”
“어디서 수작질이야.”
투명한 상태에서 두 소년을 호위하듯 둘러싼 디지몬들을 노리던 사이버드라몬은 피닉스에 의해 목이 잡혀서 모습이 드러났다. 괴로워하는 사이버드라몬을 보고 흐음, 하고 소리를 낸 피닉스는 팔을 뿌리치듯이 휘둘러서 자신의 손에 잡힌 디지몬을 던져버렸다.
“내가 나설 정도는 아닌 것 같군.”
“저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겁니까?”
“눈치 빠르네. 대신 위험에 처하면 한 번 정도는 보호해줄게.”
손에 쥔 창을 그들에게 겨누면서 전투 태세를 갖추는 사이버드라몬을 힐끗 쳐다본 피닉스는 어디선가 의자를 꺼내 앉으면서 말을 했다. 방관은 하되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말에 준과 류이치의 디지몬들, 바알몬은 쓴웃음을 지으며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간다!”
“와 바라.”
「소울 크러셔」
「헤비 스피커」
「드릴 버스터」
「메테오 스콜」
「나뭇잎 난무」
「메가 플레임」
「플라즈마 캐논」
「단풍 날리기」
「카마우치」
샤우트몬이 먼저 흉부의 안쪽에서 타오르는 마음을 마이크로 증폭해 사이버드라몬에게 쏘자 바리스타몬이 배의 스피커에서 중저음을 발했다. 도루루몬이 머리의 드릴을 발사했고, 스타몬즈는 자신의 몸으로 몰매를 날렸고, 이가몬(닌자몬)이 회전하는 나뭇잎이 섞인 회오리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그레이몬이 입에서 화염을 방사했고, 메일버드라몬이 입으로부터 초고에너지의 플라즈마탄을 발사했고, 슈리몬(수리몬)이 손발 끝의 수리검을 회전시켜 던졌다.
마지막으로 바알몬이 손에 쥔 「타신편」에서 강렬한 뇌격을 발사했다. 이에 사이버드라몬은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피하거나 창으로 베어가르거나 창을 축으로 회전하여 꼬리로 후려쳤다.
“오호~ 제법이군!”
“이제는 내 차례다.”
자신들의 공격이 회피하거나 상쇄되는 것을 본 그레이몬이 감탄을 하자 사이버드라몬은 육체를 투명한 상태로 만들고는 은밀히 접근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육감으로 사이버드라몬을 감지하려고 하는데, 순간 그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팔의 근골을 움직였다.
「글러톤 팽」
“뭣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깜짝 놀란 그레이몬이 반격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나마 지켜보고 있던 피닉스가 살짝 손을 써서 사이버드라몬의 공격을 빗나가게 만든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말한 대로 도와줬으니 알아서 끝내.”
“흥! 고맙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은 것이 좀 내키지 않는지 툴툴대며 말을 한 그레이몬은 두 입을 벌려 사이버드라몬의 창을 물었다. 그 직후에 고개를 힘껏 돌려 창을 빼내고는 저 멀리 던져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기를 잃어버린 사이버드라몬은 어쩔 수 없이 맨몸으로 그레이몬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꼬리를 휘둘러서 공격을 했고, 그레이몬도 꼬리를 휘둘러 끝에 달린 날붙이로 맞부딪쳤다.
“큭!”
“아직이다!”
사이버드라몬이 그레이몬의 공격으로 인해 살짝 휘청거리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박치기를 먹였다. 이어진 공격에 타격을 받았지만,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질러 그레이몬의 복부를 후려쳤다.
“윽! 네 놈!”
“크크큭.”
서로에게 한 방을 먹인 그레이몬과 사이버드라몬은 자세를 가다듬더니 신경전을 벌였다. 빈틈을 노려 일격을 먹이려는데, 상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멈춰서 있을 수가 없어서 기회를 엿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두 디지몬은 일부러 빈틈을 드러냈고, 일부러 함정에 넘어가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퍽-!]
“크, 크로스 카운터?!”
양측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에 꽂혔고, 피닉스를 제외한 모두가 경악하는 사이에 그레이몬과 사이버드라몬은 동시에 땅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경련을 일으키다가 간신히 안정시키고 몸을 일으킨 두 디지몬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싸우려고 했다.
“이제 그만.”
“뭐라고? 난 더 싸울 수 있어!”
“나도 마찬가지다!”
싸움이 도중에 중단되자 두 디지몬이 입을 모아 반발을 했다. 하지만 피닉스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그레이몬과 사이버드라몬의 머리를 부딪치게 만들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둘은 다시 쓰러지면서 의식을 잃어버렸고, 그 광경을 본 모두는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다만 피닉스만이 태연하게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는 입을 열었다.
“죽이기엔 아까운 실력을 지녔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그 말은… 사이버드라몬을 동료로 맞이하겠다는 건가요?”
“맞아.”
“위험하지 않을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위험이 높은 만큼 이익도 큰 법이야.”
피닉스의 말에 준과 류이치, 여러 디지몬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그레이몬과 사이버드라몬은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어났군.”
“으으, 머리야.”
“…어째서 날 살려둔 거지?”
“간단해. 널 섭외하려는 거야.”
“날 말인가? 후회할 텐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내 손으로 처리하면 돼.”
가면을 썼기 때문에 표정을 알 수 없지만 살벌하게 말을 한 피닉스는 손을 뻗어 사이버드라몬을 일으켰다. 피닉스와는 달리 얼굴이 드러났기 때문에 지금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고맙군.”
“아참, 사이버드라몬은 누가 맡을 거죠?”
“…내가 맡을게.”
준의 말에 류이치가 답하듯이 말했다. 친구가 위험한 디지몬을 맡겠다고 하자 준을 류이치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겠어?”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그레이몬이 있으니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나한테 맡겨달라고! 저 녀석과 싸우면서 정을 쌓아볼 테니까.”
사이버드라몬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레이몬은 씨익 웃으면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것을 힐끗 쳐다본 사이버드라몬은 어깨를 움직여 그레이몬의 손을 떨어뜨렸다.
그 때문에 그레이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고, 다툼이 발생하기 전에 류이치가 크로스로더를 꺼내 둘과 메일버드라몬, 슈리몬을 리로드했다. 그리고 준도 샤우트몬, 바리스타몬, 도루루몬, 스타몬즈, 이가몬을 크로스로더에 리로드했다.
“자, 그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볼까?”
여기서의 일이 끝나자 피닉스는 준, 류이치, 바알몬을 불러 모으고는 「공간전이」를 사용했다. 푸른색의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그들은 모습을 감췄고, 발키리몬의 고향이었던 곳에는 그저 바람만이 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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