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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버스터즈(VB), 보리밭.
전쟁터가 된 이곳에서 가이오몬 일행은 데몬과 그의 휘하 마왕들이 이끌고 온 군단에게 포위당한 상태였고, 네 명의 마왕과 그들의 부하들은 가이오몬 일행을 포위하고 일제히 공격할 준비를 갖췄다.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데몬은 최후를 선사하기 위해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그 때, 요란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가이오몬 일행 앞에 누군가가 귀신처럼 쓰윽 등장했다.
“오호호호홋~ 자네들, 오랜만일세.”
“바바몬(할매몬)!?”
‘…누구야?’
‘나중에 설명해줄게.’
미스티몬과 라스트(임페리얼드라몬)는 그녀를 본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귓속말로 질문을 했고, 가이오몬이 조용히 답변을 해줬다.
“오…… 흠흠,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이보게, 데몬. 저 애들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쯧쯧, 부끄럽지도 않은가?”
“당신도 제 입장이 되신다면 그런 말은 못하실 겁니다.”
바바몬은 데몬의 말을 듣고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잠시 동안 보리밭에 긴장감이 흐르고,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거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데 바바몬은 그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손에 흰색의 구체를 형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데몬에게 던졌으나 아공간에서 쌍도끼, 「흑염(黑焰)」을 꺼낸 그가 흰색 구체를 베어 소멸시켰다. 한데,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흑염」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붙잡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하시군요.”
“호호, 농담하지 말게나.”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데몬님. 저 할망구는 누굽니까?”
“베리알반데몬(베리알묘티스몬), 말조심해라!! 그녀는…….”
데몬이 바바몬의 진짜 정체를 밝히려고 입을 연 순간, 그녀는 귀신같이 데몬의 앞에 도달해 빗자루를 창 삼아 공격을 해댔다. 이에 데몬은 땅바닥에 놓여있는 「흑염」을 집어 방어 위주로 휘두르다가 거리를 벌려놓기 위해 오의, 「반월수라참(半月修羅斬)」을 그녀에게 날렸다.
반달 모양의 검보라색 에너지파가 날아오는 것을 본 바바본은 방어막을 쓰지 않고, 대신 순간이동을 써서 피하고는 소매 안에 숨겨뒀던 수십 개의 침(針)을 앞으로 던졌다. 그녀의 행동이 워낙 빨라서 빛과 같았기 때문에 데몬은 완전히 피할 수가 없었고, 일부가 몸에 적중됐다.
혹시 침에 독이 있을지도 몰라 점혈수법(點穴手法)을 써서 혈(穴)을 봉하고는 마력으로 몸에 꽂힌 침을 뽑으려고 했다. 그런데 침이 뽑히지 않고, 대신 고통이 느껴지자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는 말했다.
“설마 「부골침(附骨針)」… 입니까?”
“잘 아는구먼.”
데몬과 그녀의 대화에 가이오몬 일행과 세 명의 마왕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골침(腐骨鍼)」, 고대의 디지털 월드 때부터 악명 높은 암기 중에 하나로 손을 뻗어 상대의 몸에 가볍게 치기만 해도 침이 살 속 깊숙이 파고들어가 골격의 관절에 꽂힌다.
침엔 독이 묻어 있는데, 약효는 서서히 발작해서 매일 6번 혈맥을 따라 운행하고, 그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거기다 단번에 죽는 것도 아닌지라 4~5개월 뒤에나 죽고, 만약 힘으로 억제하면 할수록 그 고통은 더욱 가중된다고 한다.
아무튼 간에 데몬은 속으로는 불안해했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침착하게 서 있었다.
“데몬. 순순히 물러간다면 「부골침」을 뽑아주겠네.”
“죄송하지만 그 말에는 따를 수가 없습니다.”
“…못 가겠다는 건가? 하는 수 없구먼.”
은근히 빈정이 상한 바바몬은 한숨을 쉬면서 말하다가 노인의 입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고함을 지르더니 빗자루의 손잡이 끝부분으로 땅을 내리쳤다. 그러자 땅이 심하게 흔들리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치는 이변이 벌어졌고, 가이오몬 일행과 데몬을 비롯한 세 마왕과 그들의 부하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태연히 받아들이며 데몬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좋은 말로 할 때 가지 않으면 평생 고통에 시달리게 해주겠네.”
“…알겠습니다. 단, 순순히 물러나는 건 오늘 뿐입니다.”
“걱정 말게나. 다음부턴 방해하지 못할 테니.”
데몬은 바바몬의 말에 안도의 심정을 가지면서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그래서 입을 열어 질문을 하려고 했으나 몸에 꽂혀있던 「부골침」이 눈 깜짝할 사이에 뽑혀 그녀의 손에 들려있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세나.”
더 이상 싸울 수가 없게 되자 데몬은 워프 게이트를 열어서 세 마왕 및 군단을 이끌고 본거지로 돌아갔다. 그들이 사라진 후, 가이오몬 일행은 한숨을 내쉬며 안심하고는 바바몬에게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됐습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러나. 한데 자네들… 데몬의 성으로 가려는 겐가?”
“예. 그 동안 받은 고초를 되돌려주려고 합니다.”
“흠, 그렇구먼. …그렇다면 말일세.”
“예?”
“그나마 안전한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지 않겠나?”
“어디로 말입니까?”
“세라피몬의 성일세.”
바바몬이 말을 마치고 나서 빗자루의 손잡이 끝부분으로 땅을 내리치자 주변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잠시 후, 순백의 공간이 사라지고 장소가 보리밭에서 성(城)의 안마당으로 바뀌자 가이오몬 일행은 깜짝 놀랐다.
로얄 베이스나 데몬을 비롯한 다른 마왕의 성과는 달리 빛으로 장식한 듯이 찬란하고 수수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성을 보고 감탄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이 세라피몬의 성이군요.”
“그렇다네.”
“3대 천사라는 거물급 디지몬의 성이라 엄청나게 화려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수수할 줄은 몰랐네요.”
“이봐! 거물급 디지몬들의 본거지가 무조건 화려할 거라는 편견을 버려!! 아름답지 못하니까!!!”
“아, 알았어. 주의할 테니 화내지 마.”
“…어이, 우리들을 왜 여기로 데려온 거지?”
“라스트!”
“아아, 괜찮네.”
자유분방한 성격의 라스트가 바바몬에게 반말을 하자 가이오몬을 비롯한 나머지 일행은 그를 나무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을 제재하고는 라스트의 질문에 답을 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저 자네들이 이곳에서 며칠 간 머물며 수련을 하면서 실력을 더 쌓으라는 의미로 데려온 것이라네.”
“아! 그런 깊은 뜻이.”
“…내가 생각하기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데?”
라스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등 뒤에서 다섯 쌍의 황금빛 날개를 지닌 치천사형 디지몬이 나타나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그들은 은근히 기분이 상했는지 그를 노려보다가, 3대 천사 중 하나이자 이 성의 주인인 세라피몬이 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담담하게 바꾼 시선으로 바라봤다.
“오랜만이야. 세라피몬.”
“…로드나이트몬인가?”
“반응이 어찌 미지근하네?”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너의 존재로 인해 앞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을 텐데,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
“……야, 임마. 지금 말 다했어?”
“글쎄? 일단 너와의 말다툼은 나중으로 미루고… 당신이 가이오몬입니까?”
“예. 그런데 진짜 치천사님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째서 묻는 겁니까?”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너무 거시기 하니까 그런 거지.”
“…베르제브몬. 여전히 불량하고 껄렁껄렁하군.”
“내가 불량하고 껄렁껄렁한 데에 네가 보태준 거라도 있어?”
사소한 일을 가지고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베르제브몬과 세라피몬. 다른 일행과 바바몬은 그걸 보고 어이없어 했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
몇 십분 후, 베르제브몬과 세라피몬은 말싸움으로 승부를 결정할 수 없게 되자 각자의 무기인 「베렌헤나」와 「엑스칼리버」를 꺼내들고 싸우려고 했다. 하지만 육탄전은 바라지 않는 바바몬이 「부골침」을 꺼내 보이고 무언으로 위협을 하자 무기를 거두고 한 발짝 물러났다.
“싸워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으니 그만두게나.”
“……예.”
“어쨌거나, 세라피몬. 당분간 저들하고 여기에 머무를 생각인데…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오히려 영광이지요.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편히 머무십시오.”
세라피몬은 베르제브몬하고 말다툼을 할 때의 어조와는 달리, 정중하고 겸손하게 말을 하면서 바바몬과 가이오몬 일행이 묵을 방을 직접 안내했다.
*
다크 에리어(DA).
리리스몬, 베리알반데몬, 데스몬은 각각 생존한 부하들을 이끌고 성으로 돌아갔고, 데몬은 이제 막 본거지에 도착했다.
이래저래 피곤하고 심란한 탓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침실로 향하다가 주변이 너무나도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부하 하나를 불러들였다.
“…블랙오메가몬은 지금 어디에 있지?”
“저, 그것이…….”
“……나갔느냐?”
“예.”
“어디로 갔는지는… 너로서는 알 수가 없었겠지. 됐다. 돌아가라.”
부하가 명령을 받들어 떠나갔고, 데몬은 손가락으로 양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분명 블랙오메가몬은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속박해뒀지만, 전 로얄 나이츠였으니 금방 풀렸을 것이다.
그런데 블랙오메가몬은 싸움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곳으로 갔다는 얘기인데… 행방을 모르니 뭐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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