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무쌍(無雙) 시리즈 <완결>

무쌍(無雙) -20-

호르스 2025. 3. 1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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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에리어(DA).
 데몬의 성 내부에 있는 회의실에서 리리스몬, 데스몬, 베리알반데몬(베리알묘티스몬)… 세 명의 마왕이 침을 튀길 정도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현재 가이오몬 일행의 처리를 두고 의논을 하는데,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아서 짜증과 흥분 같은 감정을 바깥으로 표출하고 있는 중이었다.
 약 두세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의논이 계속되어 결정이 나지 않았고, 초조감을 견디지 못한 세 명의 마왕은 식어버린 차를 벌컥 들이키면서 다시 말을 하려고 했다. 그 때, 회의실의 문이 박살나더니 블랙오메가몬이 안으로 들어왔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그의 등장에 그들은 충격을 받아 어버버 입을 벌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 한 명의 마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여긴 어쩐 일로 왔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나…?”
 
“가이오몬과 그의 일행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의논하고 있었다. 원한다면 너도 참여하도록 해.”
 
“…….”
 
“이봐요!”
 
“그만해라, 리리스몬.”
 
 블랙오메가몬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리리스몬은 화를 내며 뭐라고 소리치려고 했다. 잘못하면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치고, 폐허만이 남을 상황에서 데몬은 조용히 지켜보다가 리리스몬에게 말을 걸었다.
 유일한 혈육에게 제지를 당했고, 동시에 보호를 받은 그녀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본 베리알반데몬은 아무도 모르게 리리스몬을 보고 비웃음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었다.
 
‘저 놈이… 나중에 두고 보자!’
 
 예전부터 베리알반데몬과 앙숙이었던 리리스몬은 순간 화를 낼 뻔했지만, 데몬이 앞에 있는지라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식히기 위해 허리춤에 달려 있는 보라색의 비단 주머니를 소중하게 손에 쥐었다.
 
“아직도 그걸 갖고 있는 거냐?”
 
“……예. 죄송하지만 먼저 가볼게요.”
 
“나중에 부를 때까지 쉬고 있어라.”
 
 데몬은 차가운 기색과 연민의 편린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눈동자에 담아 리리스몬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리리스몬은 워프 게이트를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떠난 후, 회의실 안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처음부터 참여한 세 명의 마왕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나중에 들어온 블랙오메가몬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불쑥 물었다.
 
“…회의는… 여기서… 끝인가…?”
 
“그만둔 것이 아니다. 잠시 멈췄을 뿐이지.”
 
“데몬님. 차라리 대군을 이끌고 그들을 공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인해전술을 주장하는 베리알반데몬의 말에 데몬이 흥미를 보이자, 데스몬은 진지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이유를 말해봐라.”
 
“베리알반데몬의 말대로 물량 공세로 밀어 붙인다면 분명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것이고, 로얄 나이츠를 비롯한 고위급 세력들이 저희를 주목할 겁니다. 잘못 하면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모조리 태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초가삼간이 전소된다 하더라도 독충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이다!”
 
“…….”
 
“그 말씀은?”
 
“데스몬, 베리알반데몬. 지금 내가 한 말을 리리스몬에게 전하고, 바로 본거지로 돌아가서 부하들을 정비한 뒤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
 
“…다만 대군의 준비와 그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시간은 충분히 주겠다. 대신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두 마왕은 데몬의 명령을 받들어 워프 게이트를 만들고, 우선 리리스몬의 성에 들렸다가 각자의 성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들이 떠난 뒤에 조용히 서 있던 블랙오메가몬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
 
 바이러스 버스터즈(VB).
 온천 여관에서 하루를 보낸 가이오몬 일행은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즐기고, 오후가 되기 전에 다음 마을로 떠났다. 원래라면 라스트(임페리얼드라몬)를 타고 이동하려고 했으나, 거리가 가깝다는 여관 주인의 말이 있어서 지금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넓게 펼쳐진 보리밭을 발견하고, 멀리서 마을이 눈에 들어오자 잠시 쉴 생각으로 돗자리를 꺼내 깔고는 그 자리에 앉아 차를 비롯한 음료를 마셨다.
 
“여유롭게 마시는 한 잔의 차는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로군.”
 
“그러게 말이야.”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이 여유로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거지.”
 
 발키리몬의 말에 다른 일행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어두운 낯빛으로 손을 들어 미간을 짚었다. 오늘도 용병이나 마왕 휘하의 부하가 습격해오고, 만에 하나 대장급인 마왕과 그들을 이끄는 데몬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저기, 베르제브몬.”
 
“응?”
 
“지금까지 궁금했던 건데, 데몬이 왜 너희들의 목숨을 원하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
 
“미안하지만… 아직 말할 수 없어.”
 
“어째서?”
 
“……『‘그’』하고 약속했거든.”
 
“데몬을 말하는 건가?”
 
 질문을 하는 로드나이트몬에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한 베르제브몬은 품속에서 담배인 시가(cigar)를 꺼냈다.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데, 사방에서 살기와 활기가 섞인 기묘한 기운이 느껴지자 시가를 입에서 뗐다.
 그 후에 가이오몬 일행은 곧바로 무기를 꺼내 들고 경계를 취했다. 보라색 비단옷을 입고 소매 안에 금색의 손을 숨긴 여성 마왕이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날 때까지 말이다.
 
“오랜만이야, 리리스몬.”
 
“그러게. 못 본 사이에 얼굴이 좀 수척해졌어.”
 
“여러모로 고생을 했거든.”
 
“…왠지 알 거 같아.”
 
 한 송이의 장미를 입에 물고 우아한 자세를 취하는 로드나이트몬의 모습을 본, 데몬의 여동생이자 7대 마왕 중 하나인 리리스몬은 한탄하듯이 말했다.
 그러다가 로드나이트몬과 눈을 마주쳤는데 화사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자, 비위가 상한 얼굴을 하며 베르제브몬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런 작자가 동료가 된 거, 후회하고 있어?”
 
“지금은 체념했어.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잠깐만! 지금 발언은 그냥 넘길 수가 없는데?!”
 
“사실이잖아. 너그럽게 받아들여.”
 
 베르제브몬과 로드나이트몬이 만담에 가까운 말다툼을 하는 동안에 다른 일행과 리리스몬은 난감해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때, 다시 한 번 기묘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철갑을 두른 거대한 몸집의 흡혈귀와 왼쪽 팔에 강철의 의수를 단 외눈의 마왕이 각자의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 두 디지몬은 말다툼을 그만두고, 다른 일행과 함께 포위망을 펼치고 있는 부하들을 눈으로 훑어보며 그 수를 파악했다.
 
‘마왕 한 명당 적어도 1만을 이끌고 왔군.’
 
‘확실히 끝을 보겠다는 뜻인가?’
 
“리리스몬님, 먼저 와 계셨군요.”
 
“온지 얼마 안 됐어요. 그러니 송구하다는 태도를 보이지 마세요.”
 
“……쳇.”
 
 먼저 온 리리스몬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말하는 데스몬, 그 광경을 보고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혀를 차는 베리알반데몬. 두 마왕의 상반된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던 가이오몬 일행은 속으로 어떻게 대처할지를, 또한 어떻게 하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우리들을 위해 이렇게 정성을 들이다니… 데몬이 미쳐도 제대로 미쳤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돼지.”
 
 어디선가 저벅저벅 풀 밟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로브를 두른 한 명의 디지몬이 나타나 미스티몬의 말을 반박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디지몬이 그를 보고 깜짝 놀라 시선을 집중하는데, 가이오몬 일행은 1초도 안 돼서 안면을 찌푸리며 손에 쥔 무기를 더욱 꽉 쥐었다.
 
“데몬!”
 
“그 때 이후로 다시 만나는군.”
 
“…블랙오메가몬은 오지 않았습니까?”
 
“데리고 와봤자 골치만 썩힐 것 같아서 두고 왔다.”
 
“고집을 부리지 않았나요?”
 
“처음에는 그랬지만, 움직이지 못하게 속박하고 설득을 했더니 받아들였다.”
 
‘불행 중 다행이군.’
 
 그렇지 않아도 데몬을 비롯한 리리스몬, 데스몬, 베리알반데몬과 그들이 이끌고 온 수만의 부하들을 전부 상대해야 하는 판국에 만약 블랙오메가몬까지 왔다면 산 넘어 산의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내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죽어줘야겠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될까?”
 
“될 거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테니까!”
 
 데몬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제스처를 취했고, 그것을 본 세 마왕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가이오몬 일행을 촘촘히 둘러쌌다.
 7대 마왕인 데몬과 리리스몬, 톱클래스의 마왕인 데스몬과 베리알반데몬, 그들이 이끌고 온 수만 군사… 과연 그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되어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아 훗날 이 곤경을 되갚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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