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관측자의 이야기 <완결>

관측자의 이야기 <2>

호르스 2025. 3. 27. 14:35

 오두막.
 흉포성에 몸을 맡기고 고부리몬 셋을 공격했다가 구타로 반격당하고, 갑자기 나타난 인간에게 달려들었다가 총격과 타격을 받아 기절했던 블랙길몬이 깨어났다. 천천히 일어나면서 사방을 살피던 블랙길몬은 그 인간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나이는 15살쯤 되어 보이고, 검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고, 가녀리고 선이 고운 미소년이었다. 옷을 갈아입었는지 상의는 티셔츠이고 하의는 반바지이며, 신발과 양말은 벗어 놓은 소형 배낭 옆에 있어서 맨발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기는 보이지 않지만 블랙길몬은 그때처럼 소년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겉모습과는 달리 무시할 수 없는 강자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안녕.”
 
“……넌 도대체 뭐야?”
 
“본명은 시파르. 최근에 사용하는 가명은 율릭 네이트 오언. 아카식 레코드의 관측자가 되어 지구에서 8000년 이상을 살아왔어. 디지털 월드에 온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서야.”
 
 율릭의 자기소개에 블랙길몬은 『아 씨바,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상태가 되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나마 율릭이 가까이 다가가서 건드리지 않았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해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첫 만남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것도 인연이니 나와 동행해줬으면 좋겠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비록 내가 아카식 레코드에게 선택을 받아 불로불사가 되고 다양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지만 여기서는 혼자 활동하기가 매우 힘들어.”
 
“날 파트너 디지몬으로 삼겠다는 거야?”
 
“난 선택받지 않은데다가 아이조차 아니야. 게다가 파트너라고 부르기에는 우리 사이가 아직은 애매하니까 넌 그냥 디지몬이지.”
 
“만약 거부하면 어떻게 할 건데?”
 
“내일 아침에 헤어지는 걸로 끝. 다만 나에 대해 발설하지 않으면 돼.”
 
 의외로 관대한 제안에 블랙길몬은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율릭은 블랙길몬에게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을 줄 겸해서 사소한 일을 하나 했다. 소형 배낭에서 단검인 거버 Mark II를 꺼내 들고 동쪽, 서쪽, 북쪽의 벽과 남쪽의 출입구에 각기 다른 형상의 문자를 새겼다.
 
“이건 뭐야?”
 
“룬 문자. 다른 세계에서는 이걸 매개체로 삼아 마법을 사용하기도 해.”
 
“나갈 수는 있는 거지?”
 
“응. 대신 들어오지는 못해. 그리고 내가 새겼으니 내가 지워야 룬의 효과가 사라져.”
 
 긍정적으로 보면 룬 문자가 훼손되더라도 효과는 유지된다는 거고, 부정적으로 보면 블랙길몬이 룬 문자를 건드리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간에 율릭은 고부리몬 셋이 쓰던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바로 잠든 율릭과는 달리 블랙길몬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쓰러지듯이 바닥에 누워 졸았다.
 
*
 
 다음 날 아침.
 율릭이 먼저 일어나고 블랙길몬이 뒤이어 깨어났다. 마법으로 물을 소환해서 씻는데 사용하고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한 둘은 서로를 마주했다. 옷을 갈아입고 양말과 신발을 신은 율릭은 블랙길몬의 결심이 말로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너와 함께 갈게.”
 
“고마워.”
 
“이제 뭘 할 거야?”
 
“나를 디지털 월드로 오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조사해봐야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죽기까지 힘쓸 뿐이야.”
 
 후출사표에 나오는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율릭은 단검으로 벽에 새긴 3개의 룬 문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훼손시켰다. 출입구에 새긴 룬 문자는 신발로 헤집어서 없애버렸고, 블랙길몬과 함께 입장이 가능해진 오두막을 떠났다.
 걷다 쉬고 쉬다 걷고 하면서 숲을 벗어난 율릭과 블랙길몬은 폐허가 된 유적에 도달했다. 오늘은 여기서 노숙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블랙길몬이 눈을 치켜뜨며 으르렁댔고, 율릭이 글록 권총을 꺼내들었다.
 회색의 고츠몬(울퉁몬) 여덟과 백색의 아이스몬 하나가 맞은편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우리의 영역이다. 당장 꺼져라!”
 
“말 좀 곱게 쓰면 어디가 덧나나?”
 
“저쪽에서 시비를 걸어왔으니 거리낄 거 없이 싸워보자고!”
 
「앵그리 락」
 
 블랙길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츠몬(울퉁몬)들이 머리 꼭대기에서 초경도의 광석을 사출했다. 맞을 경우 치명상이나 즉사 중 하나에 이르게 되므로 율릭은 투명한 방어막을 소환해서 모조리 막아냈다.
 몸이 얼음으로 되어있는 아이스몬은 둘째치더라도 고츠몬(울퉁몬)들은 방어력이 강해서 9×19mm 파라벨럼 탄환을 상당히 소모해야 한다. 그나마 취약한 부위인 눈을 공격하는 방법이 있지만 탄환이 소모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율릭은 글록 권총을 거두고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다른 차원의 힘을 발현했다. 붉은색 슬롯이 달려있는 벨트가 허리에 채워졌고, 손에는 보라색의 USB 형태를 한 단말기가 들려있었다. USB 단자의 옆에 있는 조그마한 버튼을 누르자 「조커(Joker)」라는 음성이 나왔다.
 
“변신!”
 
[조커!]
 
 율릭은 USB 형태 생체감응 단말기, 「가이아 메모리」를 벨트형 필터, 「로스트 드라이버」의 슬롯에 삽입했다. 그러자 J의 문장이 떠오르면서 보라색의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슬롯을 꺾자 문장이 한 바퀴 돌면서 음성이 나오고 이형의 육체로 변화했다.
 겉모습은 새까맣게 물들었고, 이마에는 W 문자처럼 생긴 은색의 더듬이가 달려있고, 어깨의 외골격과 흉부의 문양과 팔의 브레스와 다리의 앵클릿은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자, 너의 죄를 세어라!”
 
「파이어 그레네이드」
 
 가면라이더 조커로 변신한 율릭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한마디 내뱉음과 동시에 블랙길몬이 입에서 칠흑의 화염탄을 내뱉었다. 여덟 고츠몬(울퉁몬) 중 절반은 화염탄에 맞아 불타고 있고, 나머지는 회피에 성공했으나 어느새 근접한 율릭에게 두들겨 맞았다.
 질주력이 100m에 6.2초이며, 펀치력은 1.25t에 킥력은 3t이지만 율릭 본인의 전투 경험으로 낮은 스펙을 커버하고, 사용자의 감정이 격양될수록 파워가 오르는 조커 메모리의 특성이 고츠몬(울퉁몬)들을 쓰러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이스볼 봄」
 
[조커! 맥시멈 드라이브!]
 
“라이더 킥!”
 
「락 크러셔」
 
 홀로 남은 아이스몬이 얼음의 폭탄을 만들어내 율릭과 블랙길몬을 향해 던졌다. 이에 율릭은 조커 메모리를 분리해 오른쪽 허리에 끼워진 「맥시멈 슬롯」에 삽입했다. 보라색 에너지가 발에 둘러지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얼음 폭탄과 그 뒤에 있는 아이스몬에게 킥을 날렸다.
 얼음 폭탄은 두 동강이 난 상태로 터졌고 아이스몬은 라이더 킥에 맞아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운 좋게 폭사하지는 않았지만 곧이어 블랙길몬이 손톱을 휘둘러 목을 베어버렸다.
 
“고부리몬 셋에 고츠몬(울퉁몬) 여덟과 아이스몬 하나… 지금은 열둘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디지몬 슬레이어라는 악명을 얻을 것 같군.”
 
“무조건 싸우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면 되잖아?”
 
“제일 먼저 앞장서서 싸운 네가 할 말은 아니야.”
 
 아카식 레코드의 기록을 토대로 복제한 「로스트 드라이버」와 「가이아 메모리」를 소멸시킨 율릭은 변신이 해제되면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아홉 개의 디지타마(디지몬알)를 보다가 손톱에 묻은 데이터를 털어낸 블랙길몬에게 시선을 돌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그 순간, 무지개와 같이 여러 빛깔로 아롱져 보이는 에너지가 둘을 덮쳤다. 공격용은 아닌지 율릭과 블랙길몬은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고 그저 알 수 없는 장소로 옮겨졌다. 에너지가 사라진 뒤에 땅바닥에는 그슬린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후기]
저번에는 시몬의 궁검(블러드본)이 나왔다면, 이번에는 가면라이더가 나왔습니다. 다만 카피라서 오리지널의 변신 조건이나 부작용이 없는 대신 성능은 낮다고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슬슬 블랙길몬을 진화시키고 또 다른 파트너로 삼을 디지몬을 등장시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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