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관측자의 이야기 <완결>

관측자의 이야기 <속(續) 5>

호르스 2025. 3. 28. 15:00

 2024년 말.
 캔서버스 사태 이후 율릭은 혹시 모를 불상사를 예방할 계획을 구상했고 이를 실행하기 전에 대규모 회의를 열었다. 메이스(M.A.C.E.)의 국장과 지부장들, 미스틱 아츠/신비학을 배운 소서러 중에서도 사범의 자격을 가진 마스터 오브 미스틱 아츠, 각 나라의 국가원수, 종교계 지도자, 여러 인외 종족의 우두머리, 디지털 월드를 관리하는 신들과 유력 집단이 영상 통화로 한곳에 모였다. 초면이라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대립과 갈등으로 사이가 좋지 않아 침묵이 감돌고 있는데 율릭이 개최자로서 본론을 꺼냈다.
 미지의 위협을 일으키는 다른 차원의 신비한 존재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방어막을 손질하고 디지털 월드에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미스틱 아츠가 실존하는 멀티버스에는 우주 에너지 흐름의 교차 지점인 뉴욕, 런던, 홍콩에 3개의 생텀(성소)을 세워 지구를 지켰다. 율릭도 생텀을 세웠는데 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전투로 인해 파괴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적당한 선에서 원흉에게 보복하고 메이스의 본부와 지부들을 건설하여 생텀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였다.
 
“디지털 월드는 허락을 받아야 하고, 탈이 생기지 않도록 조율을 해야지.”
 
[시간이 걸릴 거다.]
 
“아무리 길어도 일이 년이겠죠.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정확히는 8500년을 살아온 율릭에게 그 정도의 시간은 찰나와도 같았다. 디지털 월드 측이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고 생각보다 빠르게 결론을 내려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지구/리얼 월드(현실 세계) 측도 위기를 겪고 싶지 않아서 한마음 한뜻으로 동의를 표했고 그렇게 해서 광범위한 방어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구/리얼 월드(현실 세계)의 방어막은 기존의 것을 보수 및 강화하면 되는지라 2023년이 되기 전에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위그드라실과 호메오스타시스가 관리하는 디지털 월드, 호메로스가 관리하는 디지털 월드: 일리아스, 원로원을 구성하는 디지몬들이 관리하는 윗체르니에도 생텀을 건설하고 환경에 맞게 조정한 방어막이 문제없이 발동해서 율릭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곳이 율릭 너의 고향이야?”
 
“그래. 세월이 너무 오래 흘러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암석과 자갈이 가득한 사막이네.”
 
“풍화를 겪으면 바닥을 이루는 모래처럼 되겠죠.”
 
“이 또한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지.”
 
“여기에 계셨군요.”
 
“마스터 닐슨(Master Nilsen). 무슨 일입니까?”
 
“우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마녀 집회(Coven)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장의 딸이 디지몬과 함께 엄중히 관리하고 있던 마법서를 훔쳐서 도망갔다고 하더군요.”
 
“…공범인 디지몬은 윗체르니 출신의 위치몬이고, 둘이 훔쳐 간 마법서는 여러 계통의 위치크래프트를 모아 편찬한 것인데 다크홀드의 흑마법도 포함되어 있군.”
 
“다크홀드는 전부 파괴하지 않으셨습니까?”
 
“크톤이 꿈을 통해 어느 한 마녀에게 흑마법 주문을 전파했어. 이렇게 허를 찌르다니 나도 아직은 미숙하네.”
 
 율릭은 파트너 디지몬 셋을 데리고 터조차 남지 않은 고향에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게이트 웨이」를 열고 나타난 마스터 오브 미스틱 아츠 중 한 명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서 정보를 찾았는데 크톤의 집념, 스칼렛 위치가 우주를 지배하거나 박살내는 것을 우습게 여겼다며 자조했다.
 아무튼 리얼 월드(현실 세계)에서 범죄를 저지른 디지몬 + 손수 없애버린 다크홀드의 재등장이라는 일을 해결하러 율릭과 파트너 디지몬 셋이 나서야 했다. 「게이트 웨이」를 열어 두 범인이 있는 건물의 건너편으로 이동하고 타임 스톤이 없는 「아가모토의 눈」을 소환해서 ‘진실을 드러내는 빛’을 방출했다.
 
“건물 안팎에 마법 봉인용과 경보용의 룬 문자가 새겨져 있군.”
 
“그냥 저걸 무너뜨리면 안 될까?”
 
“인질이 없고 저 둘은 마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테니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저도 블랙길몬과 테리어몬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원래는 약한 천장을 부수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발성 무기를 사용해 룬 문자를 파괴하려고 했는데 파트너 디지몬 셋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꾼 율릭. 즉시 카오스 워드를 읊으며 양손을 앞으로 뻗자 땅바닥에 오망성의 마법진이 생겨났고 「다이너스트 브라스[覇王雷擊陣]」라는 이름을 해방시키듯 외치는 순간 노란색의 전격이 벼락처럼 내리쳐 건물을 박살냈다.
 건물의 잔해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데 유독 한곳만 봉분처럼 둥글게 쌓여 있었다. 곧 와르르 무너지더니 율릭과 동갑처럼 보이는 소녀와 붉은 모자를 쓰고 붉은 드레스를 입고 검은 망토를 두른 디지몬이 얼굴에 검댕이가 묻긴 했지만 부상 없이 나타났다. 또한 다크홀드(사본의 복제품)보다 덜하지만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마법서가 허공에 떠 있었다.
 
“당신은?!”
 
[휙-!]
 
“안 돼!”
 
 마법서 때문에 목숨을 부지한 어린 마녀와 위치몬은 맞은편에 있는 율릭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연스럽게 빈틈이 생기자 율릭은 「엘드리치 윕」으로 마법서를 휘감아 빼앗으려고 했다.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어린 마녀는 마법서를 붙잡더니 율릭을 날려버리고자 노란색의 「엘드리치 윕」을 보라색으로 침식시켰다. 하지만 율릭이 카오스 매직/혼돈 마법으로 전환해서 맞받아치니 오히려 본인이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고작 그 정도로 날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저 노괴(老怪)가…….”
 
“위치몬은 너희에게 맡길 테니 수적 우세와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을 활용해 봐.”
 
[진화!]
 
“블랙그라우몬!”
 
“가르고몬!”
 
“쟈자드몬!”
 
 D-워치 Mk.2를 사용하여 파트너 디지몬 셋이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진화하게끔 유도한 율릭은 윤보(輪寶)라고도 불리는 차크람(Chakram)을 엘드리치 라이트로 만들어내고 혼돈 마법으로 잔해를 끌어 모아 물리적인 형태를 이루게 만들었다. 아카식 레코드로 상대의 능력을 알아냈으므로 취약한 부분을 노린 것이며 만들어낸 차크람이 어린 마녀에게 날아감과 동시에 파트너 디지몬 셋이 위치몬을 공격하려고 했다.
 
「바르루나 게일」 / 「아쿠에리 프레셜」
 
「플라즈마 블레이드」
 
「개틀링 암」
 
「레이저 아이」
 
 다크홀드의 일부 내용이 들어가 있는 마법서를 읽어서 평소보다 좀 더 강해진 위치몬은 오른손으로 마력을 띤 날카로운 바람을 날렸고 왼손으로 강철도 꿰뚫을 수 있는 초고수압을 내보냈다. 윗체르니에서 마스터한 바람과 물의 마술을 병행하는 위치몬에게 선수를 빼앗긴 파트너 디지몬 셋은 두 개의 필살기를 분쇄하는데 집중했다.
 먼저 나선 블랙그라우몬은 선홍색 가죽 벨트에 담겨 있는 힘과 양 팔꿈치의 블레이드에서 발생시킨 플라즈마를 합쳐 에너지 칼날로 개조하고 이를 통해 바람의 마술을 썰어버렸다. 이어서 가르고몬이 두 개의 고리 형태의 팔찌가 끼워진 두 팔의 발칸에서 에너지로 코팅된 총알을 발사했고, 쟈자드몬이 공중에 띄운 제트팩을 원격 조종해서 소형 미사일을 발사함과 동시에 두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병행 공격을 가해 물의 마술을 상쇄해버렸다.
 율릭이 말한 대로 블랙그라우몬, 가르고몬, 쟈자드몬은 여러 강적과 싸우면서 얻은 경험과 3 대 1이라는 상황에서 협동하며 위치몬을 밀어붙였다. 이에 위치몬은 율릭이 윗체르니에 전파한 미스틱 아츠를 사용했지만 율릭이 만든 액세서리가 위치몬의 미스틱 아츠를 흡수해서 파트너 디지몬 셋을 지켰다.
 
“재능은 있는데 사도에 빠져서 신세를 망치게 되었군.”
 
“으음…….”
 
“오래 끌어봤자 득이 되지 않으니 여기서 끝을 내마.”
 
 엘드리치 라이트에 잔해를 붙여 만들어낸 차크람을 시작으로, 엄브라의 마녀가 사용하는 「위키드 위브(Wicked Weaves)」로 마담 케프리의 주먹과 하이힐을 소환해서 공격하거나,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C-20A 산탄 소총(C-20A Canister Rifle)」의 복제품을 꺼내 들고 원거리에서 저격을 날리는 식으로 공격을 가한 율릭은 슬슬 결말을 짓기로 했다.
 반면 어린 마녀는 마법서에 의해 강화된 고유 능력, 마력 흡수를 사용하지 못할뿐더러 자잘한 상처와 소모된 체력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에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인지라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율릭이 오른손에서 발사한 에너지 광선을 맞았다. 드디어 마법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게 되자 그녀는 앞뒤 생각 없이 능력을 발동했다.
 타인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더욱 강해지면서 율릭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생각이었는데 점점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율릭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고 에너지 광선은 미스틱 아츠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란색이나 혼돈 마법의 진홍색이 아닌 프리즘 효과가 들어간 하얀색이었다. 더구나 율릭이 위치몬을 향해 왼손을 뻗더니 똑같은 색의 에너지 광선을 발사했다.
 
“이 느낌은… 설마?!”
 
“위대한 아가모토(Mighty Agamotto). 잃어버린 공기의 여신 오쉬투르(Oshtur, Lost Goddess of the Air). 하얗게 센 몸의 호고스(Hoary Hosts of Hoggoth). 이들 비샨티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거나 자시고 뒈져라, 악을 근원으로 삼는 어둠이여!”
 
“으악!”
 
“꺅!”
 
 주문과도 같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율릭의 머리 위에 한 권의 책이 나타났다. 그 책의 이름은 비샨티의 책(Book of the Vishanti), 마스터 오브 미스틱 아츠의 수장격인 소서러 슈프림(정작 율릭은 낯간지러워서 이 칭호를 쓰지 않는다)만이 그 정보를 취득할 수 있으며 다크홀드와는 정반대로 가장 강력한 백마법들과 모든 마법 비술에 대응하는 방어 주문이 수록되어 있는 마법서다.
 그러니까 율릭이 백마법을 사용해서 어린 마녀와 위치몬에게 존재하는 다크홀드의 영향을 지우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연결을 끊을 수가 없는 어린 마녀와 파트너 디지몬 셋에게 견제를 받아 움직이지 못하는 위치몬은 잠시 괴로워하다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확실하게 정화되었고 율릭의 마법 에너지에 의해 당분간 위치크래프트를 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다크홀드의 일부 내용이 포함된 마법서를 처리해야 한다. 마녀 집회한테는 미안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사본으로 존재하는 다크홀드를 파괴할 때마다 직접 나섰던 율릭은 마법서를 구체 형태의 결계에 가두고 단검을 소환하더니 그대로 투척했다. 마법 결계를 통과한 단검에 꿰뚫린 마법서는 사기(邪氣)를 내뿜다가 불타버리며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시간 딱 맞춰서 왔군.”
 
“저희가 해결해야 하는 일을 대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톤에게 이용당한 마녀는 어떻게 됐습니까?”
 
“흑마법의 부작용 때문에 괴로운 고통을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안타깝게 됐군요. 아참, 마법서는 복원하되 다크홀드의 일부 내용 대신 실전된 위치크래프트를 추가하겠습니다.”
 
 마녀 집회에 소속된 마녀들이 홀연히 나타났고 율릭과 대화를 나눈 수장이 어린 마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딸이자 죄를 저지른 마녀를 보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애써 참고 입을 열어 말했다.
 
“아멜리아 헤이워드(Amelia Heyward). 너는 우리를 배반하고 네 나이와 신분으로 넘볼 수 없는 마법을 훔쳐 그 어두운 부분을 수련했다.”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 마력 흡수는 발동할 수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당신들이 죽음에 이를 겁니다.”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다른 방식으로 처벌을 해야겠군요.”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아멜리아 양과 위치몬을 감시할 겸해서 마녀의 길(Witches' Road)로 데려가겠습니다.”
 
“마녀의 길은 구전으로 전해 오는 허구의 장소잖아요!”
 
“그게 멀티버스마다 달라. 실존하기도 하고 실존하지 않기도 하는데, 이 세계의 경우에는 명백히 전자에 속해.”
 
 율릭의 입에서 나온 마녀의 길은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차원이다.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한 시련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여정을 완료한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강한 힘을 추구하다가 죄를 저지른 아멜리아와 위치몬은 이러나저러나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고 하다못해 힘이라도 얻고자 마녀의 길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녀들. 특히 수장인 미세스 헤이워드는 아멜리아가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죗값을 받는 것이고 만약 시련을 통과하고 소망을 이룬다면 살짝 수위를 낮춰서 처벌하기로 결심했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길을 따라 내려가(Down, down, down the road)
마녀의 길을 향해(Down the witches’ road)
 
길을 따라 내려가(Down, down, down the road)
마녀의 길을 향해(Down the witches' road)
 
길을 따라 내려가(Down, down, down the road)
마녀의 길을 향해(Down the witches' road)
 
친구여, 나를 따라와(Follow me, my friend)
길 끝에 기다리는 영광으로(To glory at the end)”
 
 <마녀의 길의 노래(The Ballad of the Witches' Road)>의 가사 중 마지막 구절을 부른 율릭은 「아가모토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오각형의 입구를 만들어냈다. 마녀에 길에 들어가야 하는 두 명의 인간과 네 디지몬이 좌우에 있는 문고리를 당겨서 문을 열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고 율릭과 파트너 디지몬 셋은 아멜리아와 위치몬을 앞세우며 마녀의 길로 향했다.
 율릭은 마녀의 길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두 죄인을 감시하고 멀티버스 여행의 일환으로 동행하는 것이었다. 물론 최소 수십 년, 최대 수백 년이 지나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후기]
막상 글을 쓰다보니까 더 연재할 소재가 생겼는데 저번 화에서 말한 대로 그냥 끝내겠습니다.
캐릭터 소개와 같은 설정 글은 상황을 봐서 올리거나 생략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관측자의 이야기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