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무쌍(無雙) 시리즈 <완결>

무쌍(無雙) -14-

호르스 2025. 3. 1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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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얄 베이스.
 회의실 안에는 듀크몬과, 블랙오메가몬과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었던 분홍색 기사가 마주 앉으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애초에 거주지에서 나오지 않거나 임무를 수행 중인 인원을 제외하고, 저번(6편)에도 언급한 『그 사건』으로 인해 참여하는 인원수가 좀 줄어들었다.
 둘이서 쓸쓸하게 차를 마시다가 분홍색 기사가 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물을 채웠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디켄딩 솜씨를 발휘하자 듀크몬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불편한 심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차를 다 마시고는 천천히 음미하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다.”
 
“무슨 부탁인데? 혹 내 성향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면 사양하겠어.”
 
“……널 인정한 그 녀석과 관련된 일이야.”
 
“가이오몬을 말하는 거군.”
 
 듀크몬의 말에 분홍색 기사는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리고는 추억에 잠겼다. 2, 3년 전에 가이오몬은 로얄 베이스에 와서 잠시 동안이나마 거주 생활을 했고,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회의를 하려고 이곳에 들르는 로얄 나이츠와 어울렸다.
 덤으로 다른 로얄 나이츠조차 은근히 버거워하는 분홍색 기사의 미학을 인정해주었다. 비록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그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어?”
 
“몇 달 전부터 데몬이 가이오몬을 비롯한 일행을 노리고 있어. 아무래도 죽이려고 하는 거 같은데, 네가 보호를 겸해서 그들을 도와줬으면 좋겠어.”
 
“덤으로 데몬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조사해보라는 거지?”
 
“오~ 역시 머리 회전이 빠르군.”
 
“당연한 거 아니야? 내 아름다움은 극에 달했으니까.”
 
“아무리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역시 그건 마음에 들지 않아.”
 
“응? 방금 뭐라고 말했어?”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무튼 내 부탁을 들어주겠지?”
 
“물론이지! 아름다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몸께서 가이오몬과 그의 일행을 보호하고, 데몬의 조사를 하도록 할게.”
 
 분홍색 기사가 엄지를 척 내밀며 호기 있게 말하자 듀크몬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모든 일은 끝났다. 그래서 분홍색 기사가 가이오몬 일행을 찾아갈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보다 듀크몬이 먼저 움직임을 보였다.
 
“어디 갈 데라도 있어?”
 
“만나고자 하는 디지몬이 있거든.”
 
“누군데?”
 
“…너도 잘 알잖아? 가이오몬을 이곳으로 오게 한 장본인 말이야.”
 
“서, 설마 『그』를?!”
 
 분홍색 기사가 흠칫 놀라면서 묻자, 듀크몬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는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붉은색의 망토를 바라보며 멍하게 서 있던 분홍색 기사는 한숨을 내쉬다가 귓가에 장미를 꽂고, 몸을 빙글빙글 회전시켰다.
 우아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게 돌고 돌다가 어느 순간 순간이동을 하듯이 사라졌다. 장미향만을 남긴 채로…….
 
*
 
 딥 세이버즈(DS)와 메탈 엠파이어(ME) 사이의 해역에 자리 잡고 있던 괴물, 철갑의 프레시오몬을 처지하기 위해 가이오몬 일행과 즈도몬(쥬드몬)은 손을 잡고 바다로 나아갔다. 사건 지역에 이르자 프레시오몬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결국 버티지 못한 프레시오몬이 즈도몬의 배에 달려들어서 자폭을 감행했다. 보통이라면 동귀어진으로 끝났겠지만 가해자는 소멸하고, 피해자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유를 대자면 즈도몬이 운행하는 배가 전설로만 존재해오던 헬 오브 헤븐이 첫 번째였고,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방어 기능이 발동한 것이 두 번째였다.
 이제 앞을 가로막는 존재가 없으므로 바람을 타고 항해를 계속했고, 며칠 동안 배 안에서 지내다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메탈 엠파이어….”
 
“이름 그대로 강철의 나라로군.”
 
 미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온 가이오몬 일행은 안개로 잔뜩 깔려 있는 기계 도시를 보고 소감을 말했다.
 조금 있다가 헬 오브 헤븐이 항구에 도착하여 정박을 했고, 모든 준비를 마친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가 즈도몬을 바라봤다.
 
“고마워.”
 
“아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 말은 내가 먼저 하고 싶었어.”
 
“…개인적으로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말해 봐.”
 
“우리가 딥 세이버즈의 항구 도시에 오기 전에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바이크(바이킹)몬을 만난 적이 있었지. 혹시 그와 혈연관계에 있는 건가?”
 
“……으하하하하하하~ 개인적인 사정이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 혹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생각을 좀 해보지.”
 
 즈도몬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미스티몬의 질문을 회피하고는 조종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돛이 펴지면서 헬 오브 헤븐은 유유히 항구에서 멀어져 갔다.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헬 오브 헤븐을 보며 가이오몬 일행은 즈도몬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고, 시야에서 배가 완전히 사라지자 등을 돌려서 마을로 들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건물 안이나 지붕에 숨어 있었던 수십 명의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들을 완전히 포위해버렸다.
 
“지긋지긋하게 나오는군.”
 
“…저기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저들은 우리가 다른 용병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
 
“십중팔구는 그럴 거야.”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데몬의 감언이설과 이득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거지.”
 
 용병들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대화를 나눈 가이오몬 일행은 마지막엔 데몬과 저들을 비난했다. 그러고 나서 빠른 속도로 용병들의 틈새를 파고 들어와 공격을 했다.
 
「린화참」
 
「더블 임팩트」
 
「빙수권」
 
「펜리르 소드」
 
「코어 다트」
 
 가이오몬이 한 쌍의 「국린」을 휘두르고, 베르제브몬이 「베렌헤나」의 방아쇠를 당겨 총알을 발사하고, 판쟈몬(화이트레오몬)이 오른손을 주먹 쥐고 앞으로 내지르고, 발키리몬이 냉기가 흐르는 「펜리르 소드」를 휘두르고, 미스티몬이 마력을 담은 수정을 꺼내 야구공 던지듯이 휙 던졌다.
 
“겁먹지 마라! 저들은 우리보다 수가 적다! 공격…….”
 
「린화격」
 
「다크니스 크로우」
 
「잔영반전격」
 
「아울반딜의 화살」
 
「블래스트 파이어」
 
 가이오몬 일행의 공격에 용병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자, 리더로 보이는 자가 목청을 높여 부하들을 윽박질렀다. 그러나 「국린」을 합쳐 활의 형태로 만든 가이오몬이 시위를 당겨 쏜 빛의 화살에 맞아 사망했다.
 거기에 베르제브몬이 열 개의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고, 판쟈몬이 공중에서 뒤돌려 찬 뒤에 킥을 연속으로 날렸고, 발키리몬이 「홀리 애로우」의 방아쇠를 당겨 화살을 날렸고, 미스티몬이 화염을 휘감은 검으로 베어버렸다.
 용병들은 사지가 찢겨지고, 얻어맞고, 관통당하고, 불타버려 소멸했고, 남은 생존자는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쳤다.
 
“…끝났군.”
 
“정말 시시해.”
 
“그렇다 해도 전투 경험은 소중한 거니까 너무 싫증내지 마.”
 
“참, 이제 어떻게 할까?”
 
“여관으로 가는 건 좀 미덥지가 않아.”
 
“허면 다음 마을로 가자. 거기서 쉬자고.”
 
 일이 쉽게 끝나자 허탈하게 웃으며 불평을 하다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 그들은 몸과 무기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오자마자 떠나게 됐지만 아무런 미련이 없는지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고, 자욱하게 낀 안개가 싸움의 흔적을 덮었다.
 
*
 
 바이러스 버스터즈(VB)와 나이트메어 솔져스(NSo)의 중간 지역에 존재했던, 그러나 지금은 타다 남은 기둥만이 있는 집터에 푸른색 망토를 두르고 밝은 회색 갑옷 차림의 기사형 디지몬이 서 있었다.
 그는 뭔가를 생각하듯이 눈을 감고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뭔가를 느꼈는지 천천히 눈을 떴다. 다만 등을 뒤로 돌려 앞을 바라보지 않았는데, 거기에는 붉은 망토의 기사가 있었다.
 
“오랜만이군, 듀크몬.”
 
“내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지?”
 
“「그라니」의 비행 소리가 좀 시끄럽더군. 앞으로는 주의하는 게 좋아.”
 
“아아, 확실히 기습을 할 때는 좋지가 않지.”
 
“그런데 여기엔 무슨 일로 온 걸까?”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하지 말라고.”
 
“…로얄 베이스에는 가지 않아.”
 
“역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듀크몬은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하고는 오른손에 랜스의 형태를 한 성창(聖槍) 「그람」을, 왼손에 빛을 받아 반짝이는 성순(聖盾) 「이지스」를 소환했다.
 이에 회색 갑옷의 기사도 전투 자세를 취하고는 듀크몬과 대치 상태를 벌였다.
 
“힘을 써서라도 널 반드시 데려갈 테다!”
 
“네가? 뭐, 그 동안 실력이 늘었겠지. 어디 한 번 전력으로 와 봐라!”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탐색전을 벌이며 서 있던 두 디지몬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신호로 삼아 마주 달려갔다.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싸움을 벌이는 회색 갑옷의 기사와 듀크몬,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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