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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에리어(DA), 데몬의 성.
그 동안 독감을 앓고 있다가 이제 막 회복된 데몬은 밀린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회의실 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좌우에는 데스몬과 리리스몬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고, 덕분에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게 됐다.
서류를 정리하는 것으로 일을 완전히 끝마친 데몬이 휴식을 취하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했다. 담배를 꺼내려고 품속에 손을 넣는데, 리리스몬이 소매 안에 감춰둔 황금색의 오른손을 내밀고 힘을 방출하자 한숨을 내쉬며 손을 뺄 수밖에 없었다.
“건강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왜 피우려고 하세요?”
“이미 끊으려야 끊을 수 없어서 말이다.”
“정말이지 원…….”
“저기, 데몬님. 할 말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진지한 주제를 소재로 삼아 대화를 나누던 오빠와 여동생은 제3자인 데스몬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번에는 저희가 부하들을 보내서 그들을 처리하면 어떻겠습니까?”
“용병들로는 안 된다는 뜻인가요?”
“예. 시간이 흐를수록 용병들은 협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군. 좋아, 네 말대로 하지.”
“그러면 누굴 대장으로 해서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생각해뒀다. 그러니 준비를 해두어라!”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두 디지몬이 자신의 명령을 받들며 본거지인 성으로 돌아가자, 혼자 남색 된 데몬은 담배를 꺼내려고 손을 품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나 갑자기 기묘한 기색이 느껴지자 취하던 행동을 포기하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잠시 후에 데몬의 앞에 한 명의 디지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탁한 검은색의 갑옷과 망토를 두르고, 워그레이몬과 메탈가루루몬(메탈가루몬)의 형상을 한 두 팔을 가진 기사형 디지몬은 살기를 내뿜으며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나마 회의실에 다른 이는 없고, 유일하게 존재하는 데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나의 제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온 건가, 블랙오메가몬?”
“…그렇다…. …대신… 나의… 성향을… 인정… 해줘야… 한다…. …만약… 받아… 들이지… 않는… 다면… 그냥… 가겠다…!”
“거참, 난감한 조건을 대는군.”
“…결정… 해라….”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지. 내가 필요로 하는 건 너의 능력이지 성향이 아니니까.”
“…좋다…, …널… 돕도록… 하지…!”
이렇게 해서 계약을 맺은 데몬과 블랙오메가몬은 악수를 했다. 꽉 잡은 손을 놓으면서 데몬은 미친 듯이 웃었고, 블랙오메가몬은 그저 가만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
메탈 엠파이어(ME).
며칠 전에 한바탕 치고 받고 싸운 가이오몬 일행과 라스트(임페리얼드라몬)는 대등하게 싸우다가 막판에는 양측이 동시에 땅바닥을 나뒹굴었고, 승부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를 봐서 무효라고 결정했다. 이후 라스트가 동행을 요청하자 가이오몬 일행은 의논을 한 끝에 그를 동료로 맞이했다.
수십 분의 시간을 들여 목적지인 다음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여관으로 들어섰다. 그의 경우 떠돌아다니면서 익힌 기술을 써서 완전체인 파일드라몬의 모습을 취했고, 몸집이 줄어든 덕분에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언노운(UK), 네이처 스피릿츠(NSp), 딥 세이버즈(DS)와는 달리 강철로 덮여있는 땅을 밟으며 다음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마을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슬슬 날이 어두워지자 쉴 겸해서 근처에 있는 벽돌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것 같군.”
“조금 허름하긴 하지만, 하룻밤을 지내는 데는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으으, 더 이상은 못 참겠다!”
결벽증을 앓고 있어서 먼지가 적지 않게 쌓인 주변 환경을 견디지 못한 판쟈몬(화이트레오몬)은 발작을 일으키며 미친 듯이 청소를 해댔다. 이에 다섯 명의 일행 중 가이오몬과 발키리몬이 그를 진정시켰고, 베르제브몬과 미스티몬, 라스트가 호흡을 맞춰서 먼지를 훔쳤다.
약 30분 뒤에 집안 곳곳에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해졌고, 전 마을에서 챙겨둔 음식을 꺼내 배를 채웠다. 끝으로 차를 끓여 마심으로서 입가심을 한 가이오몬 일행은 라스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마을이 어째서 초토화된 거야?”
“실은 내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뭔가 수상한 낌새가 느껴져서 유심히 살펴봤지. 그랬더니 수많은 디지몬들이 숨어있더군. 아마 너희가 말한 데몬의 용병들이겠지.”
“그래서 그들을 상대하다가 그만 마을을 초토화시켰던 거군.”
“뭐, 내가 좀 심했지. 그나마 텅 비어있어서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았어.”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뭔데?”
“너는 다른 임페리얼드라몬과는 다르게 몸이 녹색으로 되어있는데… 원래부터 그랬던 거야?”
발키리몬의 질문에 라스트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고개를 조금씩 숙이기 시작했다.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어느 순간 멈추더니 어깨가 서서히 들썩였고, 곧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머지 일행은 괜히 물어봤나 후회를 하면서 라스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말해줄 수 없다면 더 이상 묻지 않을게.”
“…아니야. 언젠가 알게 될 텐데 미리 말해두는 게 좋겠지.”
본격적으로 말을 하기 전에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켠 라스트는 숨을 몇 번 가다듬은 후,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랬다고 하더군. 그 때문에 빌어먹을 일족들이 날 버렸고.”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배척했다는 건가?”
“발키리몬, 네 말이 맞아. 처음에는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냉대뿐이었고, 결국 어느 날 갑자기 무리에서 추방당했어. 당시의 나는 그 이유를 몰라서 이곳저곳 헤매면서 생각을 했지.”
“…….”
“하지만 불가능했어. 그도 그럴 것이 일족이란 것들은 말을 해주지 않았고, 나 자신은 깨닫지를 못했으니까. 아무튼 한 달 동안 떠돌고 있었는데, 내 앞에 기사형 디지몬 한 명이 나타나더군.”
“기사형 디지몬?”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밝은 회색 갑옷과 나풀거리는 푸른색의 망토가 인상적이었어.”
“밝은 회색 갑옷에 푸른색 망토라고? 설마…….”
가이오몬은 라스트의 입에서 나온 기사형 디지몬의 특징을 듣고, 『누군가』의 모습을 뇌리에 떠올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자』를 생각하며 진지한 표정을 드러내는데, 그걸 본 베르제브몬이 말을 걸었다.
“아는 거라도 있어, 가이오몬?”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그는 날 보고는 ‘네가 일족에게 배척당하고 버림받은 이유를 알고 있다.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일단 실력을 한 번 봤으면 좋겠군.’이라고 말했어. 그래서 싸웠지.”
“결과는 어떻게 됐어?”
“정말로 치열하게 싸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 지쳐가고 있었어. 한참을 싸우다가 결국 그의 일격에 맞아서 의식을 잃을 뻔했는데, 갑자기 몸속에서 힘이 끓어오르더니 내 모습이 변했더라고.”
“파이터 모드(FM)로 각성한 거로군!”
“그래, 파이터 모드 덕분에 그를 거의 몰아붙였지. 다만 결정적인 실수로 인해 쓰러지고 말았고, 싸움이 끝나고 나서 그는 ‘이제 알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떠나버렸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알려준 거 같은데?”
“나중에 그의 말을 곱씹어보니… 내가 지닌 힘이 너무 강해서 이를 제어할 수 없다고 여긴 일족이 날 경계하고 무서워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 뭐, 그 이후로는 일족에게 돌아가지 않고 계속 떠돌아다니면서 힘을 키웠지.”
“그런 거였군.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내서 정말 미안해.”
“괜찮아.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그런지 맘이 한결 편해졌어.”
“…저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뜨려서 미안하지만 밖을 좀 보는 게 좋겠어.”
미스티몬의 말에 나머지 동료들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밖을 봤다. 거기에는 미스티몬과 라스를 제외한 가이오몬 일행을 공격한 고쿠몬이 마왕의 부하들을 이끌고 진(陣)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나오는 순간 일제히 공격을 할 계획이지만 작업을 아직 완료하지 못했고, 지금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가이오몬 일행은 곤란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역공을 가할 준비를 했다.
“저 놈들이 바로 너희가 말하던 데몬의 부하라는 거군.”
“그래. 앞으로 만날 날이 있을 거니까 잘 기억해둬.”
“오늘 없애버린다면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을걸.”
잠시 살벌한 대사가 라스트의 입에서 나왔지만, 다른 일행도 동감하는 바이므로 잔소리를 내뱉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막 작업을 마치고 공격의 준비를 갖추려던 그들은 가이오몬 일행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마왕의 부하들을 이끌고 온 고쿠몬은 먼저 침착함을 되찾고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그런데 저쪽은…….”
“우리들의 새로운 동료다.”
“아, 그래? 이름이 어떻게 되지?”
“라스트다-!!!”
라스트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원래 모습(궁극체)으로 돌아가자 고쿠몬과 마왕의 부하들은 입을 딱 벌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이오몬 일행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가했다.
「극빙흑룡섬(極氷黑龍閃)」
「더블 임팩트」
「빙수권」
「아울반딜의 화살」
「플레임 드래곤(Flame Dragon)」
「포지트론 레이저」
가이오몬, 미스티몬, 라스트가 흑룡의 형태를 한 냉기의 에너지파, 드래곤의 모습을 취한 화염의 에너지파를 방출하고, 등의 대포에서 거대한 에너지탄으로 발사하여 진(陣)을 파괴했다. 베르제브몬, 판쟈몬, 발키리몬은 총알과 펀치와 화살로 마왕의 부하들을 하나둘씩 처치했다.
수가 서서히 줄어드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그들에게 신들린 듯이 필살기를 사용하는 가이오몬 일행. 그러다가 어느새 포위를 당했고, 빈틈을 드러내는 바람에 허를 찔리게 되자 태세를 정비하면서 고쿠몬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끌고 온 거냐?”
“적어도 300에서 400 정도는 될 거야.”
“참나, 데몬 녀석이 우릴 완전히 죽이려고 작정을 했군.”
“…근데 우리가 얼마나 죽인 거지?”
“글쎄? 내 생각으로는 백여 명 정도 될 걸?”
“……정확하게 118명이 너희에게 죽었어.”
“호오~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고-!”
「린화참」
「카오스 플레어」
「냉기공파참」
「펜리르 소드」
「프리즈 드래곤(Freeze Dragon)」
「기가 데스」
적어도 182명이나 282명 정도 남았다는 고쿠몬의 말에 가이오몬 일행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빛의 궤적, 파괴의 파동, 냉기, 마검 「펜리르 소드」를 휘둘러 만들어낸 절대영도의 기운이 담긴 검기, 청백색의 용의 형태를 한 에너지파, 가슴에 있는 용의 얼굴에 장착한 「포지트론 레이저」에서 발사한 에너지파에 휩쓸린 마왕의 부하들은 순식간에 소멸됐다. 그나마 고쿠몬과 일부 생존자들이 존재하지만 가이오몬 일행을 상대하기에는 조금 불리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하나만 골라라. 우리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할래? 아니면 데몬한테 가서 조금이라도 목숨을 부지할래?”
“……마음 가는 쪽은 후자이긴 한데, 이를 어쩐다.”
“뭘 망설이고 있어? 내키는 대로 행동해!”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데몬님의 명령이 있으면 다시 만나겠지만 말이야.”
고쿠몬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을 하고는 은밀한 곳에서 기계 장치를 꺼내 워프 게이트를 형성했다. 살아남은 마왕의 부하들이 먼저 들어가고, 뒤이어 고쿠몬도 안으로 들어서자 워프 게이트가 사라졌다.
이것으로 주변에 아무도 없고, 오직 싸움의 흔적만이 남아있자 가이오몬 일행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기야 500명에 가까운 적 병력을 상대하면서 대략 300명을 죽이느냐고 힘을 소비했으니 지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땅바닥에 앉은 채로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어느 정도 몸이 안정되자 벽돌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하늘은 어두컴컴해졌다. 마왕의 부하들이 죽으면서 흘린 피가 공기와 섞여 바람으로 변해 날카롭게 불고 있는데, 마치 죽은 원혼들이 울부짖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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