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무쌍(無雙) 시리즈 <완결>

무쌍(無雙) -18-

호르스 2025. 3. 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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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몬의 성.
 회의실 안에서 다섯 명의 디지몬… 상석에 앉은 데몬과 오른쪽에 서 있는 리리스몬과 데스몬, 왼쪽에 서 있는 베리알반데몬(베리알묘티스몬), 그리고 당당하다 못해 뻔뻔함을 드러낸 블랙오메가몬이 모여 있었다.
 데몬은 목을 살짝 꺾어 소리를 내면서 내심 불만스러운 눈길로 정면을 쏘아보았다. 좌우에 있는 세 명의 마왕도 블랙오메가몬을 노려보는데, 그는 맞은편에 있는 마왕들과 눈을 마주치며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실패했다고?”
 
“…그렇다…. …아주… 곤란한… 녀석이… 나타나… 방해를… 했다….”
 
“훗, 변명 한 번 제대로 하는군!”
 
“…죽고… 싶은… 게냐….”
 
 베리알반데몬이 피식 웃으며 비꼬듯이 말하자 블랙오메가몬은 왼팔에서 검을 꺼내 들고는 살기를 방출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베리알반데몬은 바닥에 주저앉아 식은땀을 비 옷듯이 흘렸고, 리리스몬과 데스몬은 아무런 말도 취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베리알반데몬이 블랙오메가몬의 손에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조용히 지켜보던 데몬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 앞에서 살인을 할 생각인가?”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이쯤… 해… 두겠다…!”
 
 블랙오메가몬은 데몬의 입장을 생각해서 검을 거두고는 유유히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베리알반데몬을 비롯한 리리스몬과 데스몬은 그의 허락을 받아 자신들의 성으로 돌아갔다.
 골치를 썩이던 문제가 일단락되자 데몬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곳에 자주 들르는 검은 로브의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자 다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군, 데몬.”
 
“여긴 어쩐 일로 온 거냐?”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어. 뭐, 있다면 그들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왔겠지.”
 
“가이오몬과 베르제브몬을 비롯한 몇몇 디지몬에 대해서 말인가? 너도 그들이 신경 쓰이나 보지?”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로얄 나이츠 중 하나가 그들을 보호하는데… 할 수 있겠어?”
 
“못할 것 없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블랙오메가몬을 고용한 거니까.”
 
“만약 3대 천사나 4성수 같은 거물급 디지몬들이 끼어들면 어떻게 하려고?”
 
“그건 힘들 거야. 요즘 디지털 월드의 전역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해결하느냐고 바쁠 테니까.”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후후후~’
 
“어이?”
 
“…미안하지만 오늘은 이만 가보도록 하지.”
 
 데몬이 말을 걸 때까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작별 인사를 하며 어디론가 떠났다. 데몬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가 서 있던 곳을 보다가 담배를 다시 꺼냈다.
 
*
 
 메탈 엠파이어(ME).
 블랙오메가몬의 「연옥암홍염진(煉獄暗紅炎陣)」에 의해 초토화된 마을에서 가이오몬 일행과 반강제로 동료가 된 로드나이트몬이 침묵을 유지하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와중에 로드나이트몬은 아름답게, 우아하게 찻잔을 비우고는 아래로 내려놓았다.
 
“저기, 아름다운 이 몸한테 뭐 물어볼 거 없어?”
 
“……없어.”
 
“진짜로?”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
 
“말해봐!”
 
“가이오몬이 2, 3년 동안 로얄 베이스에서 지낸 이유가 뭐야?”
 
 베르제브몬의 말에 로드나이트몬은 보이지 않는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그는 보이지 않는 입에 검지를 갔다대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말해 줄 수가 없어. 나중에 허락을 받는다면 그 때 말해줄게.”
 
“…로드나이트몬.”
 
“후훗~ 그런 표정 하지 마.”
 
“알았어. 그리고 고마워.”
 
“더 할 얘기가 없으면 다음 마을로 갈까?”
 
“잠깐만! 그냥 걸어갈 생각이야?!”
 
“왜? 그러면 안 되나?”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가는 도중에 데몬이 보낸 지속 부하나 용병들과 싸울 텐데, 한 번은 몰라도 여러 번 싸우게 되면 여러 가지로 피곤해질 거야.”
 
“듣고 보니 그러네. 흠, 거기! 라스트라고 했나?”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후후후~ 지금 당장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응? 지금 뭐라고…….”
 
“혹시 라스트를 타고 가자는 거야?”
 
“역시 가이오몬! 이 중에서 날 잘 아는 건 너뿐이라니까! 오호호호홋~”
 
 말을 마치며 우아한 자세로 웃음을 터트리는 로드나이트몬. 그 광경을 본 다른 일행은 머리를 싸쥐며 하얗게 굳어버렸는데, 유독 가이오몬만은 내성이 있는 건지 아무렇지 않아 했다.
 어찌 됐든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그들은 로드나이트몬의 의견에 따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라스트를 타고 이곳을 떠났다. 며칠에서 몇 시간으로 단축해 메탈 엠파이어와 바이러스 버스터즈(VB)의 사이에 있어서 관문 역할을 하는 마을에 도착했다.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여관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관 주인이 가이오몬 일행을 맞이하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방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식사부터 먼저 하지.”
 
“그러면 뭐로 드릴까요?”
 
「헬 오브 크라이스트(Hell Of Christ)」
 
 가이오몬 일행과 여관 주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구석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나지막이 외쳤다.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난데없는 봉변에 그들은 반사적으로 방어막을 형성하고 위력을 강화시켰다. 운 좋게 목숨을 부지했지만, 마을은 타오르는 화염과 시야를 가리는 검은 먼지에 휩싸여 소멸되었다. 경악으로 가득찬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는데, 마을을 소멸시킨 장본인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유일하게 남은 탁자에 카드 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는 가이오몬 일행을 섬뜩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카드 뭉치에서 3장의 카드를 뽑아 손에 쥐고는 입을 열었다.
 
“전력은 아니지만 나름 강하게 쓴 건데, 제법 하는군.”
 
“넌 누구냐?”
 
“일단 데몬의 동업자… 라고 말해주지.”
 
「가이아 리액터」
 
「더블 임팩트」
 
「빙수권」
 
「아울반딜의 화살」
 
「익스플로전(Explosion)」, 「데토네이션(Detonation)」, 「버스트(Burst)」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이오몬과 베르제브몬, 판쟈몬(화이트레오몬)과 발키리몬이 각자의 필살기를 날렸다. 이에 그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빛의 화살, 여러 개의 총알, 냉기가 실린 권압, 실제 화살을 향해 3장의 카드를 던졌다.
 서로가 맞부딪치는 순간 카드에서 빛이 환하게 발하더니 엄청난 소리와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네 명의 필살기가 폭발과 섞여 허무하게 분쇄되고,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사라지자 이번에는 미스티몬, 라스트, 로드나이트몬이 앞으로 나섰다.
 세 명은 빠른 속도로 움직여 공격을 퍼부었지만, 그는 카드 1장을 뽑아 손에 쥐고는 결계를 펼쳤다. 선공에 나선 가이오몬, 베르제브몬, 판쟈몬, 발키리몬도 이들을 도와서 공격에 보탬을 줬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살짝 지친 가이오몬 일행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서자 그는 탁자에 놓여 있는 카드 뭉치에서 5장을 집었다. 고유의 기운을 담고는 그들에게 던지려는 찰나…….
 
“어림없다!”
 
「프리즈 칩(Freeze Chip)」
 
 마침 결계가 해제된 상태이기 때문에 미스티몬은 왼손에 쥐고 있는 푸른색의 검, 「빙룡검(氷龍劍)」을 휘둘러 푸르스름한 기운을 방출했다. 이내 작은 수백 개의 얼음 바늘로 변해 그를 덮쳤고, 미처 방어하지 못한 터라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피했다.
 
「스플렌더 블레이드」
 
「스파이럴 마스커레이드」
 
 그 때, 파이터 모드로 각성한 라스트와 로드나이트몬이 뒤에서 튀어나와 그에게 공격을 가했다. 팔의 손톱에서 형성한 빛의 검과 리본의 형태를 한 칼날이 등짝을 노리자, 그는 5장의 카드 중 2장을 던져서 투명한 장벽을 형성했다.
 배후의 공격을 차단한 그는 다섯 디지몬을 향해 남은 3장의 카드를 던졌다. 그것을 보고 처음에는 무기를 들어 막아내거나 필살기를 써서 상쇄시키려고 했지만, 가까이 다가올수록 불길한 기운이 강해지자 생각을 바꿔서 몸을 틀었다.
 카드는 아슬아슬하게 그들을 스치며 지나갔고, 마을의 잔해나 나무 같은 단단한 물체에 닿자마자 질퍽하게 녹아 버렸다. 간신히 죽음을 면한 가이오몬 일행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한 곳에 모였다.
 
“도대체 너는 누구지?”
 
“글쎄. 아직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가이오몬 일행이 전투태세를 정비하는 동안, 그도 2장의 카드를 양손에 들고는 알아듣기 힘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오른손의 카드가 검으로, 왼손의 카드가 방패로 바뀌었다.
 혼자서 일곱 명을 상대하기 위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그들은 뒤로 물러나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무기를 고쳐 들었다. 정신적/심리적인 압박감과과 긴장감이 주변을 잠식하고 있을 때, 양측 사이에 한 명의 디지몬이 나타났다.
 머리에는 한 쌍의 뿔, 등에는 한 쌍의 날개, 마도사처럼 로브를 두른 마왕으로, 그를 본 베르제브몬은 뭐 씹은 표정을 지었고, 발키리몬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봤다.
 
“오랜만이군, 베르제브몬… 그리고 발키리몬.”
 
“그러게 말이야. 데몬!”
 
“저 놈이 데몬이라고?”
 
“이런, 내 소개가 늦었군. 7대 마왕의 『임시』 수장으로 너희들을 죽이기 위해 수를 쓰는 데몬이다.”
 
 처음으로 가이오몬 일행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데몬은 섬뜩한 안광을 번뜩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저 녀석이 갑자기 떠나 버려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설마 너희들과 싸우고 있을 줄이야.”
 
“덕분에 몸을 충분히 풀었지.”
 
“그러면 여길 떠나자고. 더 있어 봤자 이득은 없다.”
 
“흠, 아직 충분히 즐기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나. 훗날 때가 되면 다시 보자고.”
 
 데몬과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워프 게이트를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직후에 문이 닫히면서 둘의 모습이 사라졌는데, 가이오몬 일행은 쭉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 동안 고요함이 지속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무기를 거두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끝났군.”
 
“그러게 말이야. 만약 계속 싸웠다면 우리들은…….”
 
“십중팔구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냉정하게 생각한 로드나이트몬이 결론을 내리자 판쟈몬과 발키리몬은 침울한 상태로 땅바닥을 향해 발을 내리찍었다. 베르제브몬과 미스티몬, 라스트도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고, 가이오몬은…….
 
“으음!”
 
“왜 그래?”
 
“갑자기 두통이 일어났을 뿐이야. 걱정할 필요는 없어.”
 
 관자놀이에 손을 대고 지압을 하던 가이오몬은 두통이 금방 가라앉아 속으로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답을 구할 수가 없어서 뇌리에 묻어두었다.
 어쨌든 간에 초토화된 마을의 터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고, 강에 자리를 잡아 늦저녁을 차렸다. 사실상 야식으로, 검게 물든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 아래서 배를 채웠다.
 다소 흉해 보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최근 들어 가이오몬 일행이 들렸던 몇몇 마을은 생존자를 남기지 못한 채 파괴되어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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