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관측자의 이야기 <완결>

관측자의 이야기 <12>

호르스 2025. 3. 27. 16:48

 다크 에리어.
 율릭과 파트너 디지몬 셋은 리리스몬 휘하 디지몬들의 안내를 받으며 우뚝 솟아 있는 성채에 도착했다. 수많은 시선이 율릭에게 집중되었으나 오랜 경험으로 익숙해졌으며 불완전판 라그나 블레이드를 사용해서 심신이 약해진 상태라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정문을 거쳐 접견실에 이르니 여성의 모습을 한 디지몬이 침대와 소파를 겸한 가구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요염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외모를 지녔고, 머리에 여러 개의 비녀를 좌우대칭으로 꽂고, 보라색 천을 소매와 치마로서 둘렀고,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오른손은 금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 이익을 논하러 왔다고? 인의가 아니라?”
 
“나는 유학자가 아니라서 말이야. 리리스몬.”
 
 속내를 떠보는 리리스몬과 매끄럽게 답한 율릭… 둘은 탐색전을 벌이는 듯했으나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었다. 리리스몬이 부하들을 시켜 자신이 기댄 가구와 동일한 제품을 가져오게 했고, 율릭이 리리스몬의 양해를 구하고 가구에 반쯤 누워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바깥 상황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어. 위그드라실이 리얼 월드(현실 세계)를 멸망시킬 거라지?”
 
“리얼 월드를 멸망시켜야 디지털 월드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우리는 호메오스타시스와 손을 잡고 위그드라실을 저지하면서 두 세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없애려고 해.”
 
“고행을 자처하는군. 아무래도 나의, 7대 마왕의 힘이 필요한가 보네.”
 
“부정하지 않겠어. 아군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거니와 일하는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당하고 싶지 않거든.”
 
“만약에 배신을 당하면 어떻게 할 거야?”
 
“함무라비 법전 제196조, 사람이 높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제 눈을 멀게 할지니라. 함무라비 법전 제200조, 사람이 제 계급 사람의 이를 부러트리면 제 이를 부러트릴지니라.”
 
“보복하겠다는 거군. 음,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어? 바로 결정을 내릴 몇몇 녀석들과는 달라서 말이야.”
 
 리리스몬의 말에 율릭은 고개를 시원스레 끄덕였다. 일에 관한 이야기가 단락을 맺자 두 졸개가 여러 과일이 담긴 쟁반을 머리에 이고 걸어왔다. 둘은 리리스몬과 율릭의 앞에 서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어 올려 스스로 탁자가 되었다.
 리리스몬이 먼저 왼손으로 사과를 집어서 먹었고, 율릭이 뒤이어 청포도를 한 알씩 뜯어서 먹었고, 파트너 디지몬 셋은 각자 취향에 맞는 과일을 골라서 먹었다.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실제 나이가 어떻게 돼?”
 
“솔직하게 말해도 믿을 수 있겠어?”
 
“겉모습과는 달리 나이가 많은 모양이네.”
 
“지구의 역사를 기준으로 해서 기원전 6500년에 태어났으니 현재 8500세야.”
 
“…평범한 인간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불로장생이 가능할 줄이야.”
 
“모든 것을 망라한 초차원의 정보 집합체, 아카식 레코드에게 선택을 받아 늙지도 않고 잘 죽지도 않는 대신 관측자로 활동하고 있어.”
 
 율릭은 사실을 일부 숨겼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율릭의 외모가 맘에 들지만 그와는 별개로 속으로 득실을 따지던 리리스몬은 의문이 해소된 것으로 만족했다. 한동안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리리스몬이 레이디데비몬(레이디데블몬)을 시켜 율릭과 파트너 디지몬 셋이 하룻밤 묵을 방으로 안내하게 했다.
 대화를 나누고 과일을 먹으면서 몸 상태가 어느 정도 나아진 율릭은 파트너 디지몬들의 부축을 받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레이디데비몬(레이디데블몬)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방은 넓고 호화스러웠다. 방 안으로 들어간 율릭은 파트너 디지몬 셋이 들어오고 문이 닫히자 소형 배낭에서 나노 장갑을 꺼냈다.
 
“왜 그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어서 말이야.”
 
“우리가 도와줄 일은 없어?”
 
“힘을 보태겠습니다.”
 
 블랙길몬의 물음에 대답을 한 율릭은 나노 장갑을 양손에 꼈고, 테리어몬과 쟈자몬의 말에 맞춰서 손을 움직여 데이터를 조작했다. 율릭이 만들어낸 것은 소음기였다. 소형 배낭에서 글록 권총을 꺼내 소음기를 장착하고 빈 공간을 향해 겨누니 소음기에서 얇디얇은 판이 나와 목도리도마뱀처럼 펼쳐졌다.
 곧이어 판이 연결되어 반원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마치 안테나를 연상시켰다. 글록 권총을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으로 움직이다가 진동이 발생하면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나가면서 자유롭게 움직이더니 전등에 명중되었다. 파괴되지는 않았고 외형이 블루 스크린 + 노이즈 화면 같은 상태가 되었을 뿐이다.
 
“방해 매트릭스(Interference Matrix). 대상을 일정 시간 동안 비활성화시키는 특수 능력이야.”
 
“이건 도청기군요.”
 
“소형 카메라도 있어.”
 
“욕실에도 있는데. 이 정도면 철저하다 못해 변태적이야.”
 
“누가 색욕의 대죄를 담당하는 마왕이 아니랄까봐 거기까지 준비를 하네.”
 
 율릭은 7발의 총알을 소모하여 감시를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킨 후 소음기를 원기둥 형태로 되돌렸다. 글록 권총과 분리하고 데이터로 분해한 다음에 나노 장갑과 신발을 벗었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한 율릭은 곤히 잠에 들었다. 파트너 디지몬 셋은 장치가 재작동하기 전까지 글록 권총과 나노 장갑을 소형 배낭에 집어넣고 각자 알아서 쉬었다.
 
*
 
 다음 날.
 원기를 회복한 율릭은 블랙길몬, 테리어몬, 쟈자몬을 데리고 리리스몬을 만났다. 리리스몬은 침대와 소파를 겸한 가구에 앉아 어제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율릭이 도청기와 소형 카메라 등의 장치를 일정 시간 동안 비활성화시킨 행동을 어떻게 여기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한결 나아지니까 외모가 빛을 발하는군.”
 
“과찬이야.”
 
“네가 방 안의 장치를 일시적으로 못 쓰게 만들 때 나는 계속 생각을 해봤어. 일단 도와줄 마음은 있어. 하지만 말한 것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야.”
 
“좋아. 그 의문을 해소시켜주겠어.”
 
“레이디데비몬(레이디데블몬). 저들을 공터로 안내해라.”
 
 율릭과 리리스몬은 대화를 나누면서 눈빛, 표정, 태도로 서로의 속내를 읽어냈다. 레이디데비몬(레이디데블몬)을 따라 율릭이 앞장섰고 파트너 디지몬 셋이 뒤따랐다. 성채 중앙의 공터에 도달하니 리리스몬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나를 만족시켜봐.”
 
“듣기에 따라서는 민망한 말을 하는군. 아무튼 열심히 싸우겠어.”
 
[워프 진화!]
 
“카오스듀크몬!”
 
“세인트가르고몬!”
 
“메탈릭드라몬!”
 
 파트너 디지몬 셋에게 「수호자 비샨티의 강력한 보호 주문」을 걸어주고 즉시 궁극체로 진화시킨 율릭. 그러면서 소형 배낭 안에 들어있는 6발밖에 없는 글록 권총과 거버 Mark II 단검을 꺼냈다.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리춤에 두고 리리스몬과 싸울 준비를 갖췄다.
 
“하압!”
 
“기합은 정면, 공격은 측면… 영리하네.”
 
“역시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군.”
 
 카오스듀크몬이 맞은편에서 소리를 지르더니 마창 「발뭉」으로 사각을 노리자 리리스몬은 왼쪽의 섬섬옥수로 붙잡아 막아냈다. 애초에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카오스듀크몬은 실망하지 않았고 율릭이 글록 권총에서 1발의 총알을 발사하여 리리스몬이 「발뭉」을 놓게 만들었다.
 
「데몬즈 디자스터」
 
「버스트 샷」
 
「레이저 사벨」
 
 뒤로 한 발짝 물러난 리리스몬을 향해 카오스듀크몬이 「발뭉」으로 연타를 퍼부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리리스몬은 마법 방패로 막아내어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어서 세인트가르고몬이 레이저, 미사일, 바주카, 발칸, 화염방사기 등의 총화기로 일제히 사격했다. 사방팔방에서 공격이 날아오니 마법 방패가 아닌 「팬텀 페인」, 상대의 몸을 침식하는 암흑의 한숨으로 데이터를 소실시켜 무력화시켰다.
 두 디지몬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가운데 메탈릭드라몬이 꼬리의 레이저를 검으로 고정시켰다. 다음 행동은 고속으로 돌격해 베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리리스몬은 메탈릭드라몬의 공격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엠프레스 엠블레이즈」
 
“키에에에엑!”
 
“나는 황혼의 은혜를 입었노라.”
 
 리리스몬이 손 모양의 괴수를 소환하여 레이저 검을 대신 맞도록 하였다. 그런데 가로로만 베여야 하는데 세로로도 베어져 넷으로 등분되었다. 이것만은 생각지 못해 리리스몬은 깜짝 놀라며 율릭을 바라봤다.
 율릭은 하박(팔꿈치부터 손목까지의 부분)에 장비한 장치에서 나온 초록색 에너지를 검의 형태로 발현시키고 리리스몬이 소환한 괴수를 절단해버린 것이었다. 녹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로 리리스몬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읊더니 몸이 투명해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골치 아프게 만드는군.”
 
[쓱!]
 
“휴, 위험할 뻔했네.”
 
“간발의 차이라니.”
 
 잠시 난감해하던 리리스몬은 육감에 모든 힘을 집중했다. 공간이 굴절된 듯한 현상을 발견하자마자 몸을 옆으로 돌렸고 소매가 절단되며 그 부위가 불타 그을리는 것을 목격했다. 곧이어 은폐를 해제한 율릭이 「강화 차원 검(Master Warp Blade)」을 D-워치로 되돌리고 피해를 주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제 우리가 나설게.”
 
“더욱 골치 아프게 만들어주겠어!”
 
“악으로 깡으로 버티십시오.”
 
 기습에 실패한 율릭을 대신해서 파트너 디지몬 셋이 공격에 나섰다. 카오스듀크몬은 방패 「고르곤」으로 계속 후려쳤고, 세인트가르고몬은 크고 두꺼운 다리로 돌려차기를 날렸고, 메탈릭드라몬은 입자로 구성된 날개에서 빛을 내뿜었다.
 하나같이 막을 수 있고 당하더라도 큰 피해를 입지 않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신경에 거슬리게 만드는지라 리리스몬은 파트너 디지몬 셋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다. 오른팔의 금색 마조(魔爪), 「나자르 네일」을 쓰려고 했는데, 율릭이 글록 권총의 남은 5발을 발사하여 견제를 하니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걸 써야겠군.”
 
“Well, well, oh dear. What an awkward situation(이런, 이런, 세상에.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있을 줄이야).”
 
[탁-!]
 
 리리스몬이 X항체를 꺼내들자 율릭은 비아냥거리듯 말을 하더니 거버 Mark II 단검을 허리춤에서 뽑더니 즉시 투척했다. 「슬링 링」으로 「게이트 웨이」를 열어 거리를 좁히고, 단검이 X항체에 명중하는 순간 마법이 발동되었다. 율릭이 D-워치에 걸어놓은 간단하지만 풀기 어려운 보호 마법이 X항체를 감싸면서 리리스몬의 손에 약간의 화상을 입혔다.
 
“윽!”
 
“가뜩이나 강한데 X진화(제볼루션)까지 하려고? 아무리 마왕이라지만 양심은 어디다 뒀어?”
 
“양심 같은 건 팔아버렸어. 뭐, 다시 구할 수는 있지만 말이야.”
 
“…계속 싸울 건지 그만둘 건지는 네가 정해.”
 
“알았어. 실력을 확인했으니 여기서 멈추지.”
 
 잠시 비꼬는 어조로 대화를 나누던 율릭과 리리스몬은 각자의 무기를 거둬들였다. 일종의 대련이 끝나자 카오스듀크몬, 세인트가르고몬, 메탈릭드라몬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율릭은 치유 마법을 사용하여 리리스몬의 손에 입은 화상을 없애버리고 파트너 디지몬 셋을 성장기로 되돌렸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사양하지 않겠지만 음담패설이나 연애 관련은 사양하겠어.”
 
“어째서?”
 
“난 오랫동안 결혼을 여러 번 했지만 진정으로 사랑한 이는 단 한 명이었으니까.”
 
 율릭은 뜬금없이 과거의 일을 말하고는 먼저 공터를 떠났다. 파트너 디지몬 셋이 그 뒤를 따라갔고, 화들짝 놀라던 리리스몬은 정확히 알기 위해 질문을 하고자 그들을 쫒아갔다. 홀로 남은 레이디데비몬(레이디데블몬)은 하급 부하들을 시켜 공터를 정리하게 했다.
 
[후기]
이번 화에 나온 방해 매트릭스와 은폐, 강화 차원 검은 스타크래프트 2에 나온 특수 능력과 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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