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월드.
듀크몬과의 싸움을 일단락 지으면서 불안정한 「게이트 웨이」로 미러 디멘션을 빠져나온 율릭, 파트너 디지몬 셋, 베르제브몬. 좌표를 무작위로 설정했기에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베르제브몬마저 지금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율릭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등에 메고 있는 소형 배낭에서 나노 장갑을 꺼내서 양손에 착용했다. 전원을 켜고 디지털 월드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실처럼 가늘고 길게 실체화한 다음에 이리저리 조작해서 정찰용 드론 서너 개를 만들어냈다. 율릭은 드론들을 날려 보내고 D-워치를 모니터 삼아 지리를 확인했다.
“서쪽, 남쪽, 북쪽에는 별다른 게 없어. 동쪽에는… 신전 같은 게 있네?”
“신전이라고? 내 눈으로 봐야겠군.”
[구구궁!]
율릭이 먼저 신전을 발견하고 베르제브몬이 화면 너머로 신전을 살펴보면서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정찰용 드론이 흰색 번개에 맞아 파괴되었고 화면에는 노이즈가 발생했다. 영문을 몰라 하는 율릭과 파트너 디지몬 셋과는 달리 베르제브몬은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신전은 칭롱몬(청룡몬)이 거주하는 곳이다.”
“칭롱몬(청룡몬)은 4성수 중에서 기권을 택한 디지몬이야.”
“싸우게 되더라도 설득은 가능하겠네.”
“그러려면 신전 안으로 들어가야 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번개를 뚫고 말입니다.”
베르제브몬, 율릭, 블랙길몬, 테리어몬, 쟈자몬의 순으로 말을 하며 대화가 성립되었다. 그 후에 침묵이 감돌았고 머릿속으로 대처 방안을 강구한 율릭이 행동에 나섰다. 우선 베르제브몬에게 부탁하여 「베히모스」를 불러오게 했다. 즉시 소환하는 게 아니라서 「베히모스」가 베르제브몬의 앞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무튼 간에 율릭은 나노 장갑을 낀 손을 움직여 데이터로 룬 문자 여러 개를 만들어냈다. 룬 문자를 「베히모스」와 사이드카에 부착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게 조정했다. 그러고 나서 아카식 레코드를 동원해 수없이 많은 방어막들을 겹쳐서 씌웠다.
“이 정도면 일격필살의 공격은 두세 번 막아낼 수 있을 거야.”
“최고속도로 달려야겠군.”
“칭롱몬(청룡몬)의 신전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러는 게 도움이 될 테니까.”
“베르제브몬. 힘내!”
파트너 디지몬 셋은 각각 말을 하고 D-워치 안으로 들어갔다. 사이드카에 탑승한 율릭이 「게이트 웨이」를 만들어내자 「베히모스」에 올라탄 베르제브몬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엘드리치 라이트로 이루어진 포탈을 넘어갔다.
칭롱몬(청룡몬)의 신전을 눈앞에 두고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에 시달리며 이동을 계속하였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번개는 굵직해졌고 방어막은 얇아지고 있었다. 한번만 더 번개에 맞으면 방어막과 룬 문자가 사라져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마침 다수의 번개가 하나로 합쳐져 「베히모스」를 향해 내리쳤다. 이건 위험하다고 판단한 율릭은 다급히 「게이트 웨이」를 만들어 번개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그사이에 베르제브몬은 「베히모스」의 속도를 높여 아슬아슬하게 신전 안으로 진입했다.
“수고했어.”
“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리로드!]
“둘 다 괜찮은 거지?”
“별 탈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누구인가? 누가 감히 성스러운 곳에 발을 들였는가!”
통로 쪽에서 노여움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오자 율릭, 파트너 디지몬, 셋, 베르제브몬은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율릭은 소규모의 「타오 만다라」를 양손에 전개했고, 블랙길몬과 테리어몬과 쟈자몬은 무기로 쓰이는 신체의 일부를 앞세웠고, 베르제브몬은 「베렌헤나」를 꺼내들었다.
곧이어 목소리를 낸 디지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노란색이며 줄무늬가 보라색인 호랑이로 앞발 위에 한 쌍의 날개가 달려 있고 목에 붉은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5대 1로 대치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존재가 개입하면서 이를 무마시켰다.
“미히라몬. 너 혼자서 불청객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다.”
“칭롱몬(청룡몬) 님!”
“생각보다 빨리 만나게 됐군.”
“인간이로군. 곁에 있는 성장기 디지몬들은 파트너일 테고… 베르제브몬과 동행하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지?”
“허락을 해준다면 그에 대한 설명을 하겠어.”
“……좋다.”
장고 끝에 율릭의 요구를 받아들인 칭롱몬(청룡몬)은 부하인 미히라몬에게 자신의 곁으로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히라몬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상관의 곁으로 이동하자 또 다른 부하인 토끼를 닮은 안티라몬과 용을 닮은 마지라몬(마니라몬)이 나타났다.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으면 단 한 번만 설명해도 되기에 율릭은 미스틱 아츠를 동원하여 자신의 정체와 디지털 월드에서 해야 되는 일을 밝혔다. 칭롱몬(청룡몬)은 기권을 택했고 데바는 상관에게 복종하므로 혼란한 마음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었다.
“너의 방법은 까다롭지만 안정적이고 온건한 편이다. 위그드라실과는 확실히 달라.”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신이나 베르제브몬 같은 유력 집단(powerhouse)의 도움이 필요해.”
“흠,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다.”
“십중팔구 능력을 확인하고 싶으니 대결을 하자는 거겠지.”
“베르제브몬, 네 말이 맞다. 승낙하던 거절하던 계기가 필요하니까.”
“못할 건 없는데 그와 관련된 사항은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겠어.”
칭롱몬(청룡몬)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인 율릭은 어떻게 대결할 것인지를 논의하고자 했다. 율릭, 블랙길몬, 테리어몬, 쟈자몬, 베르제브몬, 칭롱몬(청룡몬), 미히라몬, 안티라몬, 마지라몬(마니라몬)이 머리를 맞대… 지는 않고 토론한 끝에 결론을 도출해냈다.
우선 베르제브몬과 칭롱몬(청룡몬)은 관람만 해야 한다. 파트너 디지몬 셋은 완전체로 진화하여 데바 셋과 대결을 한다. 마지막으로 율릭은 3번의 기회가 주어지며 0이 된 이후에는 베르제브몬과 칭롱몬(청룡몬)처럼 지켜봐야만 한다. 양측이 납득할 만한 결론이 나왔으니 파트너 디지몬 셋과 데바 셋은 대결할 준비를 하였다.
[초진화!]
“블랙메가로그라우몬!”
“래피드몬!”
“쟈자리히몬!”
“상대가 완전체라고는 하지만 4성수의 직속부하로서 절대 약하지 않아. 그러니 방심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 싸워.”
공정하게 대결한다는 점 때문에 파트너 디지몬 셋을 완전체로 진화시키긴 했으나 궁극체가 되어야 열세에 놓이지 않을 거라고 예견한 율릭은 파트너 디지몬 셋에게 경고를 했다. 그런 다음에 후드의 끈을 건드리자 깃이 세워진 망토로 변형되었다. 율릭이 망토를 통해 날아오름과 동시에 파트너 디지몬 셋이 공격을 개시했다.
“큭!”
“나름대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서투른 부분이 없지는 않군!”
「비모하나」
「해머 엣지」
미히라몬은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꼬리를 팔각봉의 삼절곤으로 변화시키는 「보봉<파오방>」을 휘둘러 블랙메가로그라우몬을 물어뜯고 할퀴고 후려쳤다. 율릭이 만들어준 선홍색 가죽 벨트에 보호 마법이 깃들어있지 않았다면 온몸이 상처로 가득했을 것이다.
블랙메가로그라우몬은 양 어깨에 달려 있는 2기의 버니어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마침 미히라몬이 「보봉<파오방>」을 땅바닥에 내리쳐서 주변에 충격파를 일으켰기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필살기가 빗나가자 미하라몬은 날개를 펄럭여 블랙메가로그라우몬을 쫓으려고 했다.
하지만 무수한 얼음의 실이 다리를 감싸고 얼어붙으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율릭이 지상으로 내려오자마자 다른 차원의 마법, 「반 레일[氷窟蔦]」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손을 갖다 대어야 하지만 어레인지를 가해 발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기회를 소모한 율릭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은 블랙메가로그라우몬은 한 팔의 「펜듈럼 블레이드」로 미하라몬을 강하게 때렸다.
“완전체일 때에는 빨라서 좋단 말이지!”
“나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야.”
「래피드 파이어」
「아시파트라바나」
공중에서 광속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호밍 미사일을 발사하는 래피드몬과 양손을 도끼로 변화시키는 보부<파오후>를 휘둘러 호밍 미사일을 절단해버린 안티라몬. 공방을 벌이면서 래피드몬은 원전(遠戰)을, 안티라몬은 근전(近戰)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티라몬이 래피드몬의 공격을 대처하면서 접근해가자 필살기를 사용했다.
래피드몬은 등에 장착된 리볼버와 두 팔에서 호밍 미사일을 연속으로 사격했다. 거기에 율릭이 만들어준 고리 형태의 팔찌가 빛을 발하더니 호밍 미사일의 수가 2배로 늘어났다. 모두 진짜인지라 안티라몬은 자신을 축으로 회오리처럼 회전하여 양손의 「보부<파오후>」로 호밍 미사일을 절단하려고 했다.
[CHAIN, NOW!]
“뭐라고?!”
“이걸로 남은 기회는 1번이군.”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가면라이더 와이즈맨(하얀 마법사)으로 변신한 율릭은 「와이즈맨 드라이버」의 「팜 오서」에 「체인 위자드 링」을 가져가 대고 마법진을 전개하여 소환한 쇠사슬로 안티라몬을 구속했다. 움직일 수 없게 된 안티라몬은 수많은 호밍 미사일의 표적이 되었고 폭연에 모습이 가려졌다.
한편 쟈자리히몬과 마지라몬(마니라몬)은 위에서 치열하게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지라몬(마니라몬)이 꼬리의 털이나 수염, 머리카락을 빛의 화살로 변화시키는 「보시<파오스>」를 날렸다. 음속 비행으로 회피하던 쟈자리히몬은 크기가 자동적으로 맞춰진 제트팩에서 소형 미사일 하나를 발사했다. 여러 개의 「보시<파오스>」 사이를 파고든 소형 미사일은 레이저 커터를 뿜어내어 빛의 화살을 토막내버렸다.
“우오오오오!!!”
「베다카」
“안전장치 해제.”
[Yes, Sir]
「메서 스파이럴」
공중전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두 디지몬은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가지고 공격을 재개했다. 먼저 마지라몬(마니라몬)이 하늘에 소리쳐 빛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으로 사라진 뒤 108개의 빛나는 「보시<파오스>」를 일제히 발사했다.
두 번째 기회를 소모할 때 가면라이더 와이즈맨(하얀 마법사)의 변신을 해제했던 율릭은 총구가 3개인 머스킷 형태의 권총, 「지퍼스 크리퍼스」를 소환해서 양손에 쥐었다. 음성 인식을 하고 소매를 변형시켜 「지퍼스 크리퍼스」를 놓치지 않게 고정했다. 그 다음은 총열이 빠르게 회전하더니 미니건(Minigun)처럼 빠르게 탄환을 발사했다.
위력이 증가한 대신 반동이 커져서 두 팔에 무리가 갔지만 억지로 참으며 마지라몬(마니라몬)의 필살기를 상쇄했다. 그 틈에 쟈자리히몬이 고속으로 스핀하면서 빛의 소용돌이를 향해 돌격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를 소모한 율릭은 베르제브몬과 칭롱몬(청룡몬)의 곁으로 이동하고 부상을 치료하는 데 집중했다.
“마지막에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한번쯤은 보여야 할 것 같았거든.”
“개선이 필요한 공격법이로군.”
“그 문제는 차차 개선해나가면 되고… 대결은 언제까지 하면 좋을까?”
“짧으면 5분, 길면 10분 정도 지켜보도록 하지.”
망토를 후드로 되돌린 율릭은 약간의 권태를 느끼고 있는 베르제브몬과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칭롱몬(청룡몬)과 함께 3대 3의 대결을 구경했다. 보호 마법 덕분에 상처는 없지만 서서히 지쳐가고 있는 블랙메가로그라우몬, 래피드몬, 쟈자리히몬과 상처를 입었지만 아직도 기운이 왕성한 미히라몬, 안티라몬, 마지라몬(마니라몬)은 전력으로 싸우고 있었다.
파트너 디지몬 셋은 또 다른 경험을 쌓아가고 데바 셋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대응이 능숙해졌다. 그래서인지 서로 우세와 열세를 번갈아가며 겪다가 다시 한 번 필살기를 사용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베르제브몬이 파트너 디지몬 셋의 앞에, 칭롱몬(청룡몬)이 데바 셋의 앞에 나타나 그들을 가로막았다.
“이제 그만해도 돼.”
“저들의 능력은 충분히 확인했다.”
“알겠습니다.”
“율릭. 팔은 괜찮아?”
“그럭저럭. 아무튼 결정을 했는지 답해줘, 칭롱몬(청룡몬).”
“…너를 도와주마. 디지털 월드와 리얼 월드(현실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그 뜻을 같이하겠다.”
칭롱몬(청룡몬)과의 협력이 가능해지자 율릭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기권을 택한 로얄 나이츠 넷과 철저한 중립을 지키는 디지몬들을 설득해야 한다. 생각 같아서는 즉시 움직이고 싶지만 파트너 디지몬 셋은 지쳤고 율릭 본인은 두 팔을 쓰기 힘든 상태이므로 여기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참고로 위그드라실의 개입을 걱정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후기]
본편에 나온 반 레일[氷窟蔦]는 슬레이어즈의 정령마법 물 계열 주문이고, 가면라이더 와이즈맨(하얀 마법사)은 가면라이더 위자드에 등장하는 가면라이더이자 다크 라이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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