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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冥界).
“7대 마왕이나 타락한 아폴로몬은 피부 질환과 같아서 약을 쓰거나 시술을 받으면 치료가 가능하지만, 그 뒤에 있는 흑막은 내장과 골수에 파고들려는 중병이나 다름없어서 그냥 놔두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워낙 신출귀몰하고 철저함까지 갖춰서 완전히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를 이렇게 칭한다고 하더군요.”
“블랙 버틀러(Black Bulter).”
의식을 잃은 플루토몬의 목덜미를 잡은 채로 『반신』 페라리우스에게 7대 마왕과 타락한 아폴로몬의 배후에 있는 자를 밝힌 피닉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이븐이 충격과 경악에 물든 표정을 짓고는 피닉스의 옷을 붙잡았다.
“지금 그 말! 사실인 건가?”
“그래.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블랙 바틀러라면….”
레이븐에게서 과거의 일을 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팀 트리니티 세이비어와 협력자들은 블랙 바틀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들을 제외한 소수의 멤버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모르는 이들을 위해 다시 설명을 해줬고, 시간이 흘러서 납득하기 전까지는 다소 혼란에 빠졌다.
“블랙 바틀러의 정체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디지털 월드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거죠.”
“으음!”
“거기에다가 오라클의 행방불명에도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오라클이 행방불명된 이후에 7대 마왕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과연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우연 같은 건 없어. 있는 건 필연 뿐이지. 아마 그대의 생각대로 디지털 월드의 혼란을 진정시키는 것을 막고자 오라클에게 손을 쓴 거겠지.”
피닉스의 말에 동의를 한 페라리우스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고뇌를 하고 있었고, 모두가 그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눈을 뜬 페라리우스는 아무 말도 없이 대장간으로 들어가더니 풀무를 꺼냈다.
“제약이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도움은 줄 수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도와주겠다. 우선 너희들의 무기를 강화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페라리우스는 사실상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한 것이고, 그 점을 잘 알기 때문에 팀 트리니티 세이비어, 피닉스, 협력 관계에 있는 디지몬들이 모두 진심으로 고마움을 드러냈다.
곧이어 플루토몬이 깨어났고 비록 피닉스와 싸울 때의 충격으로 기억이 일부 손상됐지만, 그들에게 협력하여 타락한 아폴로몬에게 붙잡힌 다른 올림푸스 12신을 구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예정대로 명계의 총괄자와 『반신』의 협력을 얻게 되자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올림푸스 12신의 본거지로 가기로 했다. 마침 이곳으로 이동한 제피로스-원에서 잭과 노조무가 밖으로 나왔는데, 플루토몬과 페라리우스는 노조무를 보고는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왜 그러세요?”
“…아니, 내가 아는 인간과 닮아서 말이지.”
“어쨌든 간에 내일 있을 아폴로몬과의 싸움에서 우세를 점할 방법을 의논하고 싶습니다.”
노조무와 타치바나 형제를 번갈아 바라보던 플루토몬과 페라리우스는 의혹이 생기긴 했으나 일단 마음속에 묻어두고는 피닉스의 말대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다.
이승을 기준으로 해서 시간이 많이 흘렀으나 만족할 만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바로 휴식을 취하면서 식사 준비를 했다. 플루토몬과 페라리우스를 제외한 이들은 저승의 식자재를 먹을 수가 없어서 제피로스-원에 있는 식재료를 꺼내서 다듬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아이들도 다른 이들을 도와 요리에 참여했는데, 그 중에서 진은 바삐 움직이면서도 두 눈은 준에게 향했다. 디지크로스 혹은 초진화를 사용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던 동생이 이번만큼은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때라면 긍정적으로 여겼겠지만, 플루토몬이 했던 말이 떠올라 걱정이 되었다.
‘흐음, 산 자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서 말이지.’
“……형-!!!”
“응? 아, 미안.”
“어디 안 좋은 데라도 있어요?”
“아니야.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걱정 끼쳐서 미안해.”
진은 동생에게 부담이 될까봐 얼버무리고, 준은 자신과 관련된 일임을 눈치 챘으나 그 때문에 형이 더 걱정할까봐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진 가운데, 이를 완화시키기 위해 노조무가 나섰다.
“이러다가 음식이 식겠어요.”
“맞는 말이야. 식으면 맛이 없어져.”
“흠, 오랜만에 이승의 음식을 먹게 되겠군.”
“저승의 음식은 맛이 어떤가요?”
“딱히 맛의 의미가 없단다. 다만 산 자가 먹는다면 상극 작용을 일으키겠지.”
주제를 전환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게 되자 타치바나 형제는 그 계기를 마련한 노조무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 이후의 일에 관해서는 킹 크림슨(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능력을 사용한 것처럼 생략하기로 하고… 밤이 되어서 모두가 잠들고 있을 때, 피닉스가 제피로스-원 밖으로 나왔다.
정신을 집중하고 좌우의 손을 모으는 시늉을 하자 빈 공간에 검은 가루가 모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고드름처럼 생긴 흑요석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액체화되다가 재질이 나무로 된 소형 불상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물질조작을 행하는 중에 기척이 느껴지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니. 류이치?”
“흑요석이 액체가 되었을 때부터요.”
“보아하니 궁금한 게 있나 보군.”
“방금 전의 물질조작은 금속이나 자기장 조종 능력으로는 불가능한데,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플루토몬과 싸울 때 나는 풀파워를 발휘하겠다고 말했어. 그 덕분에 플루토몬을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영향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지. 이르면 내일 오전에는 소실될 거야.”
피닉스는 설명을 하듯이 말을 하여 류이치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의심을 해소시켰다. 그러고는 제피로스-원으로 돌아가면서 대화를 나눴다.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회의실 내부의 책장에 구비되어 있으며 류이치가 읽은 병법서에 대해 논하는 것과 내일 있을 싸움에서 실행할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 지였다.
“네가 염려하는 대로 처음에는 막히게 될 거야.”
“역시. 아폴로몬은 우리가 다시 올 거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 대비를 해놨겠죠.”
“그래서 『반신』의 협력을 필요로 했지.”
“부디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성공해야지.”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것으로 류이치와의 대화를 마친 피닉스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등을 바라보면서 아직까지 티끌만한 의심이 남아있던 류이치는 훗날 기회가 되면 세세히 묻기로 하고 준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다음 날.
오후가 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친 팀 트리니티 세이비어와 협력자들은 제피로스-원에 탑승하여 피닉스가 본거지로 삼는 차원을 거쳐서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을 초월한 곳을 통해 이동한 거라 시간의 지연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결계가 해제되어있군.”
“대놓고 환영하겠다는 거네요.”
“좋아. 원한다면 그렇게 해줘야지. 진입하면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해. 만약 문제가 생기면 상황에 맞춰서 행동하고.”
피닉스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사라진 결계 너머로 들어가자마자 두 패로 나누어 타락한 아폴로몬과의 싸움과 아홉 명의 올림푸스 12신의 구출을 맡게 되었다.
전자는 피닉스, 준, 류이치, 진, 노조무를 비롯해서 샤우트몬, 아그니몬, 그레이몬, 메일버드라몬, 볼프몬, 발두르몬, 더스크몬, 제스몬, 시스터몬 자매, 유노몬, 디아나몬, 플루토몬, 페라리우스이고, 후자는 유코와 잭을 비롯해서 레이븐, 홀리엔제몬(홀리엔젤몬), 바리스타몬, 도루루몬, 스타몬즈, 베르제브몬(바알몬), 이가몬(닌자몬), 리리몬(릴리몬), 와이즈몬, 라나몬, 스파다몬, 데커드라몬, 사이버드라몬, 슈리몬(수리몬), 바로몬, 알볼몬, 다크나이트몬, 스패로우몬, 츠와몬, 모니터몬 셋, 베츠몬, 메르큐레몬(머큐레몬), 쿠즈하몬이었다.
지난번에는 등산을 해서 힘들게 도착했다면 이번에는 제피로스-원의 자동비행 모드를 써서 간편하게 도착했다. 아홉 명의 올림푸스 12신의 구출을 맡게 된 이들이 먼저 내려서 이동을 개시했고, 타락한 아폴로몬과 싸우게 될 이들도 곧이어 내리더니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라.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유피테르의 자리에 앉다니, 간이 부었구나.”
“막강한 힘을 얻었으니 그에 걸맞게 오만해진 거겠죠.”
“묘하게 찔리는군. 흠, 그 힘을 포기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아폴로몬.”
“거절합니다. 그리고 다른 올림푸스 12신을 빼돌리는 건 어려울 겁니다.”
삼중 봉인에서 풀려나 유피테르몬의 좌석에 앉아 다섯 명의 인간과 디지몬 열셋, 『반신』 한 명을 맞이하는 아폴로몬. 대화를 나누면서 아폴로몬이 대비책을 세워뒀음을 눈치 챘고, 디지몬들 사이에 끼어서 모습을 감춘 류이치가 귀에 장착된 소형 통신기를 통해 이를 알렸다.
그들을 조용히 노려보던 아폴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습적으로 화염 구체를 날렸다. 아직 초진화 및 더블 스피릿 에볼루션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격을 받게 되자 내심 당황해하는데, 페라리우스가 손가락을 튕겨서 방어막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완전히 막아냈다.
“이 정도쯤은 맹세에 걸리지 않겠지.”
“설마… 『반신』까지 섭외한 건가?!”
“지금은 널 상대하기 위해서, 그 이후는 블랙 버틀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지.”
“뭐라고?!”
[초진화!]
[더블 스피릿 에볼루션!]
아폴로몬이 당황해하는 사이에 샤우트몬과 그 전에 디지크로스를 한 메탈그레이몬이 오메가샤우트몬과 지크그레이몬으로, 아그니몬, 볼프몬, 레베몬이 된 더스크몬이 아르다몬, 베오울프몬, 라이히몬으로 진화했다.
회복 및 보조 역할을 맡은 시스터몬 자매와 페라리우스를 제외하고, 제스몬, 발두르몬, 유노몬, 디아나몬, 플루토몬이 진화를 마친 다섯 디지몬의 곁에 서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아폴로몬과 싸우게 되었다.
「하드 록 혼」
「트라이던트 팽」
「브라흐마 실」
「츠바이핸드」
「슈발츠 레르자츠」
「슈베르트가이스트」
「오로라 언듈레이션」
「러브 바스켓」
「크레센트 하켄」
「카오스 라이츠」
불꽃의 근원이 되는 용기의 정열을 주먹에 휘감아 근거리에서 타격을 가하는 오메가샤우트몬, 왼손의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잘게 썰어버리고자 하는 지크그레이몬, 디지코어(전뇌핵)의 성스러운 불꽃을 한계까지 불태워서 태양에 가까운 중심핵을 스스로 만들어내서 대폭발시키는 아르다몬, 대형 검 「트리니다드」를 상단에서 광속으로 뽑아 늑대의 형상을 한 검기를 날리는 베오울프몬, 주위 일대의 모든 물리법칙을 무력화할 정도의 공격을 가하는 라이히몬.
정령 비슷한 「아트」, 「르네」, 「포르」와 함께 총 아홉 개의 칼날로 맞서 싸우는 제스몬, 「퍼지 샤인」의 정화의 빛을 최대로 증폭해 방출하는 발두르몬, 유피테르몬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소환해서 공격 도구로 삼는 유노몬, 달의 신비로운 힘으로 현혹시키고 적을 즉시 공격하는 디아나몬, 혼돈의 기운이 담긴 빛을 내뿜는 플루토몬.
이에 맞서서 아폴로몬도 반격을 가하는데, 바커스몬과 케레스몬의 힘을 사용해서 술과 흙이 섞인 방벽을 만들어 막아낸 다음에 넵튠몬의 무기인 「킹스 바이트」와 미네르바몬의 무기인 「올림피아」를 동시에 소환했다. 두 개의 무기를 양손에 쥐고는 힘껏 휘둘러 그들의 공격을 완전히 분쇄했다. 그러고 나서 앞으로 한 발짝 나섰는데, 갑자기 무기를 땅바닥에 떨구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크윽!”
“왜 저러지?”
“아, 저번에 싸울 때 아폴로몬이 제 목을 붙잡고 힘껏 졸랐기에 에너지 나이프로 그의 머리를 찌르고 힘을 방출시켜 뇌에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아마 그 여파가 남아있어서 고통을 겪는 걸 겁니다.”
“정말이지 너는 적으로 돌리면 안 되겠군.”
운이 나쁘면 죽을 만한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그걸 태연하게 말하는 피닉스를 보고 살짝 질린 듯이 말하는 플루토몬. 뭐, 본인도 피닉스한테 된통 당한 적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어쨌거나 아폴로몬은 충혈된 눈으로 그들, 특히 피닉스를 노려보더니 무기를 다시 집으며 돌진했다. 괴성까지 질러가며 비주얼 적으로 끔찍함을 선보이자 피닉스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방아쇠를 당겨 탄환을 발사하면서 「도화금편」을 휘둘러 돌진을 저지했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내상으로 고통 받는 주제에 말은 잘 하네.”
아폴로몬은 여러 개의 탄환을 무시하고, 「도화금편」을 손으로 잡고는 피닉스를 내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지난번과 같은 방식으로 당하고 싶지 않은 피닉스가 채찍에 에너지를 주입하고 아폴로몬의 몸에 흘려보내는 것으로 내상을 악화시켰다.
그 때문에 아폴로몬이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으며 주춤거리자 피닉스는 「도화금편」의 손잡이, 그리고 거기에 연결된 채찍을 움직여 손을 떼게 만들고 덤으로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꽤 오래 버티는군. 그 정도면 벌써 자리보전을 했어야 하는데.”
“너만큼은 반드시 죽이겠다!!!!!”
“할 수 있다면 말이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아폴로몬은 자신의 상태는 개의치 않고 힘을 모조리 끌어 모았다. 그러면서 유피테르몬의 아령을 닮은 두 개의 해머와 메르크리몬(머큐리몬)의 단검 「아즈텍」, 불카누스몬의 공구마저 소환되었다.
다섯 종류의 무기가 허공에 붕 떠서 일렬로 늘어서있자 페라리우스는 아이들을 자신의 곁으로 옮겼고, 싸울 수 있는 인원은 무기나 자세를 고쳐 잡았다.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 아폴로몬이 먼저 움직이려는 순간,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괴로워하더니 엄청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힘이…….”
[피닉스. 아홉 명의 올림푸스 12신을 구출했습니다.]
“수고했어.”
귀에 꽂고 있는 소형 통신기를 통해 잭의 보고를 들은 피닉스는 잭과 유코, 다른 디지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제 손쉽게 싸울 수 있게 됐는데, 그 전에 시간과 시점을 돌려서 올림푸스 12신 아홉의 구출을 맡은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류이치로부터 아폴로몬이 대비를 세워뒀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유코는 크로스로더를 꺼내서 언제든지 디지크로스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췄다. 그렇게 정면을 향해 걷다가 수많은 디지몬들이 갇혀 있는 거대한 유리관들을 발견했다.
“이제 저들을 밖으로 빼내면 되겠네요.”
“…일단 주변에 매복해있는 적들을 처리해야지.”
[스르륵!]
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과 기둥이 문처럼 좌우로 벌려지더니 그림자처럼 검은 외관을 지니고 있으며 갈라지는 듯한 붉은 선이 지나가고 검은 연기가 둘러싼 듯한 모습을 한 디지몬들이 나타났다.
“디지몬… 인가요?”
“잠시만. 흠, 결과가 나왔군. 순수한 디지몬이 아니라 기운 같은 게 응축되어 만들어진 존재들이야.”
“그렇다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여도 상관없겠군.”
디지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크나이트몬이 「트윈 스피어」를 든 상태로 빠르게 움직여 열 명 이상을 베어버렸다. 사실 직접적으로 죽인 수는 서너 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여섯 일곱은 그 여파에 휩쓸린 것뿐이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죽을 줄은 몰라서 다크나이트몬은 얼이 빠지긴 했지만, 곧이어 수가 다시 보충되자 그새 침착함을 되찾고는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약한 맷집을 보완하려고 물량을 늘린 것 같군.”
“유코. 디지크로스를 부탁하지.”
“알았어.”
[디지크로스!]
다크나이트몬의 말에 크로스로더를 치켜들고 있던 유코는 디지크로스를 실행했다. 그 대상은 스패로우몬과 바리스타몬, 베르제브몬(바알몬)과 도루루몬, 데커드라몬과 사이버드라몬, 마지막으로 다크나이트몬과 스파다몬이었다.
「홀리 디스인펙션」
「메테오 스콜」
「파이어 원무검」
「플라워 커터」
「이터널 니르바나」
「젤러시 레인」
「단풍 날리기」
「파이로키네시스」
「머신건 댄스」
「맨티스 댄스」
「수룡」 × 3
「츳코미 펀치」
「제네시스 미러」
「태장계만다라」
홀리엔제몬이 날개에서 빛을 발사해 어둠을 정화하는 것으로 소멸시켰고, 스타몬이 픽크몬들과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유성처럼 내리꽂듯이 돌진했고, 이가몬이 적의 화염 공격을 역이용해 칼에 불을 붙여 강화시킨 다음에 힘껏 휘둘렀고, 리리몬이 공중에 떠서 날카롭게 벼려진 꽃잎을 휘감은 발로 공격했고, 와이즈몬이 나중에 자세히 연구하고자 「시공석」에 봉인했고, 라나몬이 산성비를 내리게 만들어서 신체를 녹여버렸다.
이어서 슈리몬이 손발 끝의 수리검을 회전시켜 공격했고, 바로몬이 불꽃을 일으켜 태워버렸고, 알볼몬이 춤을 추듯이 기괴한 움직임을 선보여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킥을 날렸다.
츠와몬이 「맨티스 암」을 변형시키면서 춤추듯이 잘게 잘라버렸고, 모니터몬 셋이 힘을 합쳐서 물대포를 발사했고, 베츠몬이 물리적인 위력이 약한 펀치를 날려 적의 신체를 붕괴시켰고, 메르큐레몬이 「아이러니의 방패」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그대로 반사했고, 쿠즈하몬이 「석장」을 땅에 꽂고 주문을 외워 사기를 제거하는 정화 결계를 형성했다.
마지막으로 바리스타몬과 디지크로스한 스패로우몬이 고속 비행으로 스스로가 미사일이 되어 충돌했고, 도루루몬과 디지크로스한 베르제브몬(바알몬)이 두 개의 포문과 「베렌헤나 SDX」에서 세 줄기의 광선을 발사했고, 사이버드라몬과 디지크로스한 데커드라몬이 등에 짊어진 「사이버 런처」로 지상을 공격하고 등에 탑재된 「데커드 런처」로 공중을 공격했다. 남은 두 디지몬인 레이븐과 다크나이트몬은 「이유태가(이라타가)의 검」과 「트윈 스피어」 및 무기화된 스파다몬으로 남은 소수의 적을 일소했다.
“이제 저들을 빼내면 되겠군.”
“기다려봐.”
잭은 디지몬의 형상을 한 검은 존재를 검색할 때 썼던 기계를 사용해서 유리관의 제어 장치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서 발밑에 있음이 밝혀지자 디지몬들의 도움을 받아 강제적으로 장치를 끄집어 올렸고, 해킹하여 작동시키는 것으로 유리관을 열게 만들었다.
“…너희들은?”
“유피테르몬, 당신을 포함한 다른 올림푸스 12신을 구출하러 왔습니다.”
“유노몬과 디아나몬은 저희와 협력해서 아폴로몬을 상대하고 있어요. 덤으로 플루토몬 역시도 말이죠.”
“플루토몬이…….”
악을 처벌하는 방식의 차이로 갈등을 빚어서 최근까지 험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플루토몬이 자신을 비롯한 다른 올림푸스 12신들을 구출하려고 나섰다는 사실에 유피테르몬은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유피테르몬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구출 자체는 성공했기 때문에 잭은 피닉스에게 보고를 했다. 그렇게 다시 시점을 옮겨서 피닉스는 구출 팀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렸다.
“…그런고로 이제 아폴로몬만 처리하면 돼.”
“크아아아아악-!!!!!!”
“피닉스! 아폴로몬의 가슴이….”
진의 말에 피닉스와 다른 아이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디지몬, 『반신』 한 명은 아폴로몬의 가슴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검은색의 줄기가 자라나고 있었고, 다른 신체로 퍼지면서 똬리를 트는 뱀처럼 휘감다가 침식을 일으켰다. 곧이어 아폴로몬이 기괴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 앞에 검은 연미복 차림의 젊은 인간 남성이 홀연히 나타났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고 만나는 건 처음이로군.”
“네가 블랙 버틀러냐!”
“워워~ 괜히 힘쓰지 말라고. 지금의 난 그저 홀로그램일 뿐이니까.”
“홀로그램을 남긴 이유는 뭐 때문이냐?”
“인사를 하기 위해서지. 나의 일을 방해하는 존재… 바로 너 말이다.”
“그거 참 고맙군. 앞으로도 방해할 생각이니 기대해달라고.”
“훗! 좋아. 우선 내 장기짝을 상대하도록 해. 그게 첫 만남을 기념하는 선물이니까.”
로얄 나이츠, 7대 마왕, 3대 천사와 맞먹는 위상을 지니고 있는 올림푸스 12신의 멤버 중 한 명을 쓰다 버릴 말 취급하고,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스르륵 사라져버린 블랙 버틀러.
십중팔구 검은 열매가 발아시켜 아폴로몬을 꼭두각시로 삼아 폭주 상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아폴로몬은 괴성을 지르며 아이들을 목표로 삼고 돌진했다. 그마나 페라리우스가 자신의 힘으로 아이들을 공중에 띄우고 비눗방울 같은 방어막 안에 넣어서 보호해준 덕분에 피해는 받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미쳐버린 사자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3대 천사를 원래대로 되돌린 그 힘을 쓰면 되잖아요?”
“시간이 좀 걸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피닉스가 뒤로 물러서며 힘을 모으는 사이에 팀 트리니티 세이비어 측 디지몬 여섯과 제스몬, 두 명의 올림푸스 12신, 플루토몬은 아폴로몬을 공격했다. 오메가샤우트몬, 지크그레이몬, 아르다몬, 발두르몬, 유노몬, 플루토몬이 원거리에서 공격하고, 제스몬, 베오울프몬, 라이히몬, 디아나몬이 검과 창, 양인창(兩刃槍)으로 근거리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아폴로몬을 침식한 식물 줄기가 여섯 디지몬의 원거리 공격을 흡수했고, 네 디지몬의 무기를 붙잡더니 그들의 힘을 강탈하려고 했다. 그나마 명계를 떠나기 전에 페라리우스가 무기를 손을 본 덕분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어째서 아스카가 블랙 버틀러를 경계했는지 알 것 같군.”
“웬만한 공격이 통하질 않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삑-! 삑-!]
“…뭐지?”
[디지크로스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했다. 지금 크로스로더에 전송했으니 잘 쓰길 바란다.]
크로스로더의 제작자가 보낸 문자를 보고 준과 류이치에게 시선을 향하는 피닉스. 마침 두 소년은 백은색과 하늘색의 크로스로더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현상에 당황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피닉스와 눈을 마주쳤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오메가샤우트몬과 지크그레이몬을 힐끗 쳐다보는 식으로 신호를 보내자 준과 류이치는 서로를 바라보고는 크로스로더의 상단부를 맞대어 연결했다.
“오메가샤우트몬!”
“지크그레이몬!”
[더블 크로스!]
오메가샤우트몬과 지크그레이몬은 크로스로더에서 나온 빛을 쐬고는 하나로 합체되었다. 지크그레이몬은 이족보행 형태가 되어 머리는 등 뒤로 옮겨졌고, 오메가샤우트몬은 머리가 가슴 위에서 솟았으며 두 다리가 칼날로 변형되어 오른팔이 되었다.
신속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오메가샤우트몬과 무쌍의 파워를 기반으로 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지크그레이몬이 하나가 되면서 탄생한 크루세이드 형태의 디지몬, 그 이름은…….
“샤우트몬DX(디 크로스)!”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군.”
“캬아아아악-!!!!!”
샤우트몬DX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감지하고 이를 평가하는 플루토몬과 괴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아폴로몬. 이에 샤우트몬DX는 오른손의 총검 「일렉트릭 버스터 크로스」와 왼손의 거대한 손톱 「트라이던트 저스팡」을 교차하여 막아냈다가 튕겨내고는 돌려차기를 날렸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한 아폴로몬이 분노를 드러내며 식물 줄기를 살아있는 촉수처럼 조종하여 샤우트몬DX를 휘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샤우트몬DX가 전신에 불꽃을 방출하는 것으로 식물 줄기를 완전히 태워버렸다.
“시간이 됐다.”
“좋았어!”
“이제 끝을 내도록 하지.”
「브레이브 비트 락 더블 크로스」
「철검성패」
「그레이스 랜스」
「애로우 오브 아르테미스」
「해가드 클러스터」
피닉스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불꽃의 형태를 한 에너지를 몸에 두르자 샤우트몬DX, 제스몬, 유노몬, 디아나몬, 플루토몬이 행동에 나섰다. 여기서 하이브리드체 디지몬 세 명과 발두르몬이 나서지 않는 이유는 잘못했다간 아폴로몬이 죽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제스몬이 아폴로몬의 오른팔을, 유노몬이 아폴로몬의 왼팔을, 디아나몬이 아폴로몬의 오른쪽 다리를, 플루토몬이 아폴로몬의 왼쪽 다리를 무력화시켰다. 그 후에 샤우트몬DX가 지옥의 맹화(猛火)와도 같은 불길을 몸에 걸치고 아폴로몬에게 돌진했다.
비록 멀쩡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반격을 가할 생각으로 아폴로몬은 탁한 불꽃을 내뿜었다. 두 가지의 다른 화염이 맞부딪치며 치열하게 밀고 밀치는 가운데, 갑자기 아폴로몬이 인상을 찌푸리며 괴로워했다. 피닉스의 공격으로 인해 생긴 내상이 다시 발작한 것이다.
결국 아폴로몬은 샤우트몬DX의 화염에 휩쓸렸고, 이어서 피닉스가 그의 가슴에 손을 갖다 대고는 에너지를 주입하여 검은 열매를 소멸시켰다. 그리고 외상과 내상을 완전히 치유하는데, 마취 조치는 생략한지라 엄청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으어어어어~”
“혹시 몰라서 블랙 버틀러가 복구해줬던 하반신의 구슬 두 개도 재구축했습니다. 다만 그에게 넘어가서 악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생각해서 마취는 안 했습니다.”
“으… 음….”
검은 열매의 영향으로 탈진 상태에 빠진 건지 아니면 치료 중에 고통이 심했는지 아폴로몬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그 직후, 구출 침이 올림푸스 12신 아홉 명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샤우트몬DX와 원래대로 돌아온 아폴로몬을 보게 되었다.
이것으로 싸움이 완전히 끝나게 되자 샤우트몬DX는 디지크로스를 해제하여 둘로 나눠지고, 다시 진화를 해제했다. 동시에 공중 위에 떠있는 방어막 안에 있던 아이들이 지상으로 내려왔는데, 눈에 띄게 안색이 창백해진 준이 갑자기 휘청거리며 쓰러지려고 했다.
“준-!!!”
“괜찮아?!”
“모르겠어. 지난번과는 달리… 너무 힘들어.”
“일단 장소를 옮기지. 여기보다 넒은 곳으로 말이야.”
방금까지 싸움터였기에 어지럽게 늘어진 주변에서 상태를 살펴본다는 것은 불편하므로 그들은 아폴로몬을 포함한 올림푸스 12신 열 명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유노몬과 플루토몬, 디아나몬이 각각 유피테르몬, 아폴로몬을 부축하면서 앞장을 서자 다른 이들도 뒤를 따라갔다.
준은 더블 크로스로 인해 기력 소모가 너무나 커서 형에게 업히자마자 바로 잠에 들었고, 류이치와 유코가 좌우에 자리하며 같이 이동했다. 잭은 제피로스-원에서 의료 기구를 가져오기 위해 따로 움직였고, 피닉스는 준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다가 노조무의 손을 잡고는 아이들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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