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관측자의 이야기 <완결>

관측자의 이야기 <15>

호르스 2025. 3. 27. 18:08

 발바몬의 성.
 황금을 바탕으로 강옥의 한 종류인 홍보석(루비), 금강석(다이아몬드), 홍마노(사도닉스), 비취(제이드), 보석으로 가공된 산호(코랄), 자수정(애미시스트), 진주(펄), 혈석(블러드스톤), 홍옥수(카닐리언), 흑요석(옵시디언) 등의 수많은 보석이 장식되어 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천박함이 느껴지는 곳에 「게이트 웨이」가 형성되더니 의식을 잃은 발바몬을 어깨에 들쳐 업은 베르제브몬과 카오스듀크몬, 세인트가르고몬, 메탈릭드라몬으로 진화한 파트너 디지몬 셋에 「게이트 웨이」를 만들어낸 율릭이 발을 들였다.
 
“아무도 없는 건가?”
 
“내가 알기로는 타천사형 디지몬들을 조종해서 부하로 써먹다가 디지코어를 보석으로 바꾸고 빈 육체를 꼭두각시로 개조해서 성을 경비하게 만들었다 하더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꼭두각시들이 몰려오고 있어.”
 
 세인트가르고몬이 몸 내부의 감지기(센서)로 확인하고 나서 총기(銃器)와 화기(火器)를 일제히 사격할 준비를 갖췄다. 이에 카오스듀크몬은 양손을 「발뭉」과 「고르곤」으로 변화시켰고, 메탈릭드라몬은 꼬리의 레이저 건에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곧이어 특정 부위에 실밥이 드러난 타천사형 디지몬들이 느린 속도로 걸어오거나 날아왔다.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저 서있을 뿐이지만 엄연히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좌우로 짝 갈라서며 길을 틔웠다.
 
“성공했군.”
 
“율릭. 어떻게 된 거야?”
 
“손에 들고 있는 건 발바몬의 지팡이잖아?”
 
“설마 그걸로 저들을 조종하신 겁니까?”
 
“응. 마법적 해킹을 시도해봤어.”
 
 율릭은 파트너 디지몬 셋이 꼭두각시들과 대치하는 동안 싸움터에 두고 온 발바몬의 지팡이, 「데스 루어」를 소환했다. 엘드리치 라이트로 만든 룬 문자를 붙이고 지팡이에 담겨있는 발바몬의 힘을 안정적으로 다루어 꼭두각시들을 제어한 것이다.
 싸울 필요가 없어졌으니 율릭, 파트너 디지몬 셋, 베르제브몬은 발바몬을 챙겨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도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신경 쓰지 않고 유일하게 침대가 있는 방에 이르렀다. 베르제브몬이 발바몬을 침대에 던지듯 내려놓자 율릭은 바닥에 「타오 만다라」를 설치하고 거기서 나온 쇠사슬로 발바몬을 속박했다.
 
“이제 깨우기만 하면 돼.”
 
“수염이 없으니까 젊어 보이면서도 우스꽝스럽군.”
 
“자충수를 뒀으니 그 대가를 치룬 겁니다.”
 
“욕심에 눈이 멀었지.”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못하게 된 발바몬을 보고 베르제브몬은 비웃고, 메탈릭드라몬과 카오스듀크몬은 비판하고, 율릭은 손을 뻗어 회복 마법을 걸었다. 초록색 빛이 번쩍이면서 턱에 앉은 피딱지가 사라졌고 곧바로 발바몬이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엘드리치 체인(Eldritch Chain)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물 밖으로 나와 파닥거리는 생선처럼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처지가 바뀌니까 기분이 참 더럽지?”
 
“잘 아는 사실을 굳이 이야기하다니 너도 성격이 좋다고는 할 수 없군.”
 
“네가 잔꾀를 쓰지 않았다면 조금이나마 정중하게 대했을 거야.”
 
“그래. 내가 잘못했다.”
 
“바로 사과하니까 오히려 미심쩍은데. 뭐, 아무렴 어때.”
 
 발바몬을 신뢰하지 않는 율릭이지만 위그드라실 저지 및 디지털 월드와 리얼 월드(현실 세계)의 멸망 방지를 위해서는 필요한 존재이므로 우선 「타오 만다라」를 소멸시켰다.
 미스틱 아츠로 거두어들인 게 아니라 한 정만 소환한 「지퍼스 크리퍼스」를 쏴서 박살냈으며, 엘드리치 체인이 사라지자 파트너 디지몬 셋과 베르제브몬은 발바몬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그럴 필요 없어. 간신히 되찾은 자유를 걷어차 버릴 만큼 어리석지 않거든.”
 
“게다가 지팡이의 제어권이 나한테 있으니 헛된 짓을 할 가능성은 낮아졌지.”
 
“룬 문자로군. 어째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미스틱 아츠를 사용하는 차원에서는 아스가르드의 올파더가 미미르의 샘물을 통해 발굴하기 전에 최초의 악마가 만든 유물이니까. 사악한 존재가 만들어서 그런지 흑마법(Dark Magic/Witchcraft)으로 취급되기도 해.”
 
“다른 차원이라고?!”
 
“나는 율릭 네이트 오언. 모든 것을 망라한 초차원의 정보 집합체, 아카식 레코드에게 선택을 받은 관측자야. 또한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서 다른 차원의 힘을 원본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지.”
 
 율릭의 정체를 알게 된 발바몬은 탐욕의 근원이 된 의문을 해소하게 되었다. 여전히 디지몬들이 무기를 겨누는 가운데 율릭은 발바몬과 대화를 나눴다. 주 내용은 협력 관계를 맺는다면 실현이 가능한 선에서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거래였다.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
 
“율릭, 너의 유전자로 복제인간<휴먼 클론>을 만들 수 있게 해줘.”
 
“…다시 구속해버려. 아니면 공격하게 해주든가.”
 
“혹시 모르니 복제인간<휴먼 클론> 개발은 허락할게. 하지만 그걸 통해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할 생각은 하지 마. 디지털 월드라 할지라도 리얼 월드처럼 실패할 테니까.”
 
 「베렌헤나」를 고쳐 쥐며 짜증을 감추지 않는 베르제브몬을 손짓으로 제지한 율릭은 의료기기를 소환했다. 적당한 양의 피와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아 손상되지 않게 담아두고 발바몬에게 건네주면서 경고와 경험담이 섞인 말을 해 주었다.
 발바몬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율릭의 피와 머리카락을 받았는데 붉은 두 눈에는 기대와 실망이 걸핏 스쳐지나갔다. 지구에서 8000년 이상을 살아온 율릭은 발바몬의 심정을 간파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데스 루어」를 돌려주되 룬 문자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니 그냥 놔뒀어.”
 
“그렇군. 흠, 오늘은 내 성에서 머물 건가?”
 
“아니. 벨페몬을 본 다음에 데몬(마왕몬)을 만나러 갈 거야.”
 
“데몬(마왕몬)이야 대화가 통하겠지만 벨페몬은 어려울 텐데.”
 
“그냥 놔뒀다가 위그드라실이 이용하려고 들면 곤란하지 않겠어?”
 
 율릭과 발바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파트너 디지몬 셋과 베르제브몬은 생각에 잠겼다.
 현재 다크 에리어를 감싸고 있는 에너지 방벽은 7대 마왕이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율릭이 다른 차원의 마법(라그나 블레이드)을 사용해서 뚫고 들어왔으니 디지털 월드를 관리하는 신이자 호스트 컴퓨터인 위그드라실이라면 파훼하고도 남았다.
 그 후에 벌어질 만약의 일을 걱정하고 있는 율릭이며, 파트너 디지몬 셋과 7대 마왕 둘도 안심하지 못했다. 대비를 해야 한다는 율릭의 뜻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파트너 디지몬 셋과 베르제브몬은 동감을 했고 발바몬은 벨페몬이 있는 장소의 좌표를 알려줬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다시 만나게 되면 제대로 된 예의를 갖추도록 하지.”
 
 재회를 염두에 두고 발바몬과 작별 인사를 나눈 율릭은 「게이트 웨이」를 만들어 놓고 파트너 디지몬 셋과 베르제브몬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게이트 웨이」를 유지하는 엘드리치 라이트가 사라지면서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발바몬은 율릭과 디지몬 넷이 완전히 떠났음을 확인하고 지팡이를 챙긴 다음에 실험실이 있는 지하로 황급히 뛰어갔다.
 
*
 
 한편 율릭과 파트너 디지몬 셋과 베르제브몬은 벨페몬이 머무는 지역이자 봉인되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황폐하다는 말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곳이네.”
 
“부하를 두지 않는데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피아를 불문하고 파괴하려 드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벨페몬은 어디에 있는 거야?”
 
“지하다. 밀실이 된 어두운 공간에서 자고 있지.”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함정은 없지?”
 
“있으면 곤란합니다.”
 
“…….”
 
 카오스듀크몬의 물음에는 대답을 한 베르제브몬이 세인트가르고몬과 메탈릭드라몬의 말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상 함정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율릭은 소형 배낭에서 나노 장갑을 꺼내 양손에 끼고 데이터를 조작하여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율릭이 만들어낸 물건은 둥근 형태의 드론 두 개였다. 허공에 떠오른 것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드론은 알아서 움직이더니 입구를 찾아냈다. 즉시 안으로 들어가자 율릭은 D-워치로 홀로그램 지도를 펼쳐 내부를 확인했다.
 
“죽창은 기본이고, 산성 액체, 화염 방사기, 전기 충격, 냉동가스, 레이저 커터 등 함정이 여러 종류로 있네.”
 
“마법을 사용해서 바로 이동하면 되지 않을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울 거다. 순간이동과 관련된 능력을 차단해놨거든.”
 
“정밀하게 탐지한 결과 베르제브몬의 말이 옳아. 「게이트 웨이」는 통하지 않겠어.”
 
 허공에 떠있는 두 개의 구체 드론을 그대로 고정시킨 율릭은 두 눈을 감았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서 해결책을 찾는 중이었다. 몇 분 후에 눈을 떴는데 눈동자는 붉게 빛났고 양손에는 검은 연기가 끼어있는 붉은색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손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앞세우고 지하 공간으로 들어가는 율릭과 그 뒤를 따르는 카오스듀크몬, 세인트가르고몬, 메탈릭드라몬, 베르제브몬. 각종 함정이 생체 신호를 인식하자마자 발동했으나 검붉은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시간이 되감긴 것처럼 취소되었다.
 
“저기 있군.”
 
“지금은 슬립 모드이지만 깨어나면 본래 모습인 레이지 모드로 돌아가지.”
 
“더 이상 접근하면 벨페몬의 필살기인 「이터널 나이트메어」에 의해 영원한 잠을 자게 될 거야.”
 
“너만의 방식으로 봉인할 거지?”
 
“그래. 벨페몬의 활동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이곳에 들어온 자들의 발목을 잡는 용도이지만 말이야.”
 
 율릭은 양손에 발현된 검붉은 에너지를 사방에 퍼뜨렸다. 머리에 두 개의 거대한 뿔과 열 개의 돌기가 나 있고, 이마에 두 개의 털과 세 개의 손톱자국 같은 흉터가 있으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명종 달린 쇠사슬에 포박당한 귀여운 모습의 벨페몬을 제외하고 공간 전체가 바뀌어갔다. 미로가 생기고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알아낸 물건과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뒤에 넓적한 망치머리가 달려 있고 손잡이가 긴 도끼, 코브라의 후드와 방울뱀의 꼬리를 가진 엄청나게 거대한 뱀 형상의 괴수, 머리가 검은색이고 양쪽 가슴에 검은 하트 무늬가 박힌 발레리나와 머리가 노란색이고 가운데 가슴에 검은 다이아몬드 무늬가 박힌 발레리노인데 정수리가 훤한 두 명의 남성, 진화의 탑에서 소환한 나락의 여왕(Empress of the Fathoms)이라는 이명을 가진 악마 바알(Baal), 미쳐버린 엔트몬을 마무리할 때 잠깐 변신한 가면라이더 잔게츠 카치도키 암즈 등 여러 존재가 미로에 배치되었다.
 
“어이구야. 남의 힘을 억지로 사용하니 몸에 무리가 가는군.”
 
“도대체 뭐기에 힘들어하는 거야?”
 
“카오스 매직/혼돈 마법. 스칼렛 위치(Scarlet Witch)만이 온전히 쓸 수 있는 마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물질이든 생성하고 변형하거나 삭제할 수 있으며 생각한 것이 현실에 구현화되는 무서운 능력이지.”
 
“대단하네.”
 
“평소에 자주 쓰는 노란색 마법과는 다른 거군요.”
 
“정식 명칭은 미스틱 아츠/신비학. 서로 다른 멀티버스 사이를 연결해 이를 오가고 다른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추출해 내거나 고위 존재의 힘을 빌려와 이를 다루는 마법이야. 난 아카식 레코드로 지식을 얻었을 뿐이고 스스로 습득한 터라 원본이나 다름없어.”
 
“카오스 매직은 특정인만이 발휘할 수 있고 미스틱 아츠는 누구나 익힐 수 있다고 보면 되나?”
 
“응. 그렇게 생각해도 돼.”
 
 파트너 디지몬 셋, 베르제브몬과 대화를 나누면서 기력을 회복한 율릭은 「슬링 링」을 착용시킨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을 원형으로 돌려 「게이트 웨이」를 열었다. 카오스 매직에 의한 현실 조작으로 딱 한 번 출입이 가능해진 것이며 효력이 사라지기 전에 율릭, 파트너 디지몬 셋, 베르제브몬은 「게이트 웨이」를 거쳐 지상으로 이동했다.
 
“베르제브몬. 우리를 데몬(마왕몬)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
 
“좋아. 대신 멀미에 시달리지 않도록 대비를 해놔.”
 
 율릭은 똑같은 경험을 겪고 싶지 않아서 마시는 형태의 멀미약을 소환해서 즉시 복용했다. 30분이 지나 약의 효력이 나타났고 베르제브몬이 부른 「베히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드카는 멀쩡한 상태로 「베히모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카오스듀크몬, 세인트가르고몬, 메탈릭드라몬은 블랙길몬, 테리어몬, 쟈자몬으로 퇴화하더니 D-워치 안으로 들어갔다. 베르제브몬은 율릭이 사이드카의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 힘차게 엔진을 붕붕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마지막으로 율릭은 멀미를 방지하고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후기]
원래는 데몬(마왕몬)의 근거지에 도착하고 파트너 디지몬 셋이 데몬(마왕몬)과 싸우려는 장면에서 끊으려고 했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시일이 더 걸릴 것 같아서 취소하고 여기서 끊었습니다.
이번 화에 카오스 매직/혼돈 마법으로 창조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스톰브레이커(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② 거대 뱀(케빈 인 더 우즈)
③ 마카오와 조마(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4기 핸더랜드의 대모험)
④ 바알, 나락의 여왕(베요네타 시리즈)
⑤ 가면라이더 잔게츠 카치도키 암즈(가면라이더 가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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